주 일 예 배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이라.
롬14:14-23절 말씀입니다.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또 확신하는 것은 아무것도 그 자체가 부정한 것은 없으나 어떤 것을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에게는 부정한 것이니라. 15 그러나 만일 네 음식 때문에 네 형제가 슬퍼하게 되면 네가 이제 사랑을 따라 행한 것이 아니니 네 음식으로 그를 망치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하여 죽으셨느니라. 16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 받지 않게 하라. 17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이라. 18이러한 것들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쁨이요, 사람들에게는 인정을 받느니라. 19그러므로 화평을 위한 일과 서로를 세워 주는 일들을 따라야 할지니라.20음식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망치지 말라. 사실은 모든 것이 깨끗하지만 남을 실족케 하며 먹는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악이니라. 21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며 무엇으로든지 네 형제를 넘어지게도 아니하고 실족하게도 아니하며 연약하게 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22 네게 믿음이 있느냐? 그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신이 승인하는 일로 자신을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3그러나 의심하는 자는 그가 먹을지라도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먹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니라. 믿음으로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 * ******* * *******
O 본문 14절에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또 확신하는 것은 아무것도 그 자체가 부정한 것은 없으나 어떤 것을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에게는 부정한 것이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20절에서도 [모든 것이 깨끗하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아무것도 그 자체가 부정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 것은, [주 예수 안에서 알았기 때문]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O 물론 이 14절의 말씀이 모든 것을 다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 자체로는 깨끗하고 부정한 것이 아니지만, 그러나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부정할 수가 있고 악하게 작용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전10장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에 대해서 이미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고전10:19절에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은 무엇이며 또 우상들에게 바친 제물은 무엇이냐?]라고 말합니다. 사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O 우상이란 사람 손으로 만들어 놓은 것일 뿐,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에 거기에 바친 제물 또한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데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우상의 제물이 어떤 사람, 그것이 무엇인가가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무엇인가가 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는 우상에게 바친 제물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우상에 대한 진리의 지식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것을 먹든 말든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상황에 따라 먹기도 하고 먹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상당히 문제가 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는 큰 슬픔이 되고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O 그래서 그 음식 자체로는 전혀 부정한 것도 악한 것도 나쁜 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그것과 관계하다 보면, 거기서 부패가 파생되고, 사악한 것이 파생되고 나쁜 것이 나오게 된다는 데에 바로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다. 원래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나 본래대로 사용하지 않고 유전자를 변형시켜 사용하고, 순리를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는 반듯이 그것은 부정한 것, 악한 것이 나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O 그래서 그것이 좋은 것이지만, 사용자가 잘못사용하고 그릇되게 사용하면 부정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롬1:27절에 [마찬가지로 남자들도 여자들을 본래대로 쓰는 것에서 벗어나 서로 음욕이 불 일듯 하니 남자들이 남자들과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자기 자신들에게 받았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O 그래서 [아무것도 그 자체가 부정한 것은 없으나] 그렇다고 모든 것이 다 그렀다는 것은 아닌데, 그것은 [그것을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그 사람에게는 부정한 것]이기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O 그래서 어떤 것이 부정한가, 아닌가, 판가름 할 때 우리는 두 가지 기준을 적용하여 살펴봐야 합니다. O 하나는, 성경에 비추어 합당한가를 살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기14절의 말씀처럼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또 확신하는 것은 아무것도 그 자체가 부정한 것은 없으나 어떤 것을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에게는 부정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우리들이 어떤 일에 있어서 [나는 이것을 부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므로 이것은 부정한 것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만으로 끝내지 말고, [그렇다면 성경에 비추어 볼 때도 정말 그것이 부정하지 않은 것인가?] 하고 한 번 더, 생각해 본 다음에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O 15절에 [그러나 만일 네 음식 때문에 네 형제가 슬퍼하게 되면 네가 이제 사랑을 따라 행한 것이 아니니, 네 음식으로 그를 망치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하여 죽으셨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리스도인 형제를 [망친다]는 말은, 그를 지옥으로 보낸다는 뜻이 아닙니다. O 그 사람과 다른 그리스도인들 간의 교제를 훼손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의 그리스도와의 교제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어떤 특정한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다른 형제가 깜짝 놀라 충격을 받게 되었다고 할 때, 우리는 그를 망친 격이 되는 것입니다.
O 16절에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 받지 않게 하라]고 말씀을 합니다. 앞에서 이미 말한 것처럼 이 구절은 그리스도인의 행동 지침들 중 한 가지를 제시한 것입니다. 복음을 전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과연 그것이 적절한 행동인가? 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O 성경 말씀에 비추어 근거가 분명하고, 기준이 올바르며, 동기가 순수하고, 목표가 정당하다면, 아무도 우리들이 행하는 그 일을 비방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무슨 일을 하든 옳은 일을 해야 하고, 그래서 우리는 아무도 우리들을 욕하지 못할 그런 일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O 그러나 우리들이 아무리 옳은 일을 할지라도 그 일을 비방하는 자는 언제, 어디서나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래서 어누 누구에게도 비방 받지 않을 일을 찾아내기란 사실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뭐라고 욕하고 험담하고 비방할지라도 자신들의 비방과 험담과 욕을 결코 정당화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O 그래서 이 구절 말씀의 핵심은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 받지 않게 하라]는 말씀은 [그러므로 너희는 누가 비방하더라도 그들의 비망이 결코 정당한 비방일 수가 없는 그런 선한 일을 하라] 는 뜻인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비록 우리들이 옳은 일을 한다 하더라도, 그러나 그것이 진리의 지식을 따라 하지 않고 단순히 옳은 일이라고만 생각해서 열심을 내는 것이라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오히려 정당한 비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하지 아니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축복해 주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O 그렇다고 새벽 같이 일이나 곧이 자는 사람을 찾아가 큰 소리로 축복을 한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0 나는 그 사람에게 축복을 해주므로 나 자신은 아주 옳은 일을 한 것일지 모르지만, 그러나 축복을 받은 당사자는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로 여기게 된다는 말입니다.그래서 잠27:14절에 보면, [이른 아침에 일어나 큰 소리로 친구를 축복하는 자가 있나니 그것이 그에게는 저주로 여겨지리라.]고 말씀 합니다. 그래서 아는 것도 없으면서 거기에 대한 진리의 지식도 없으면서 열심만 내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O 그래서 전에는 아는 것도 없이 무조건 열심만을 가지고 뛰어 다녔지만, 그러나 우리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해 가고, 진리의 지식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침착해지고 차분해지게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O 열차나 전철 안에서 바른 교리도 아닌 것을 가지고 찌 져지는 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예수 천당 불신자 지옥이라고 외치면 그것이 과연 전도가 되는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그리스도에게 해가 되는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O 옆에 탄 사람이 자고 있는데 흔들어 깨워놓고 예수 믿으세요, 하면 따귀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복음 때문에 맞는 것이 아니라, 미련해서 맞는 것이므로 맞아도 싼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지만, 그러나 우리들이 전하는 복음이 결코 비방 받지 않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 받지 않게 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O 17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희락이라.]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아주 명쾌하게 정의를 내려줍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물리적, 문자적인 [나라]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O 오늘날 한국의 목회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 [천국, 하늘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정확히 구분할 줄 아는 사람들은 사실 1%로 안 됩니다. 그래서 이 17절의 말씀을 해석해 보라고 하면, 기가 막힌 말들을 쏟아 내는 것입니다.O 오늘 본문에서 분명하게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따위와 같은 물질적인 나라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천국]과는 다른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은 물리적인 나라요, 문자 그대로 물질적, 현실적인 왕국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지상의 나라요, 눈에 보이는 메시아의 왕국이며, 실질적 권력이 행사되는 국가입니다.
O [천국]은, 장차 재림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세우셔서 현실적으로 군림하게 될 국가이지, 신비적 형태의 국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지금 존재하는 비가시적인 신비적 형태의 국가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먹고 마시는] 물질적 형태의 국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O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이 땅 어딘가에 집단 마을을 형성하고 공동체를 이루어 살면서 나라에 세금을 안 내도 된다든지, 구원받은 사람은 무슨 죄를 져도 죄가 되지 않는 다는지, 평화 유지를 위해 공동 토론을 한다든지, 공해가 없는 깨끗한 환경을 유지한다든지, 전쟁도 없고 범죄도 없는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이상적이고 완전한 상상 세계를 건설한다든지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라고 말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O 이런 자들은 한 마디로 정신병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들이 세우는 나라가 아니고, 그렇다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나라도 아닙니다.[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나라도 아닙니다. O “하나님의 나라”는 혈과 육은 상속받을 수 없는 나라가 곧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혈과 육이 상속받을 수 없는 나라는, 결코 인간들이 건설 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0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자]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확장하는지는 모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세울 수도 없는 그 [하나님의 나라]를, 인간이 확장할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입니다. O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즉, 물질적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이라]고 말씀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천국]과는 달리 가시적인 물리적, 물질적, 현실적 국가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 형성되는 [영적인 나라]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밖에서는 결코 형성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바로 내적인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내적 “의”와, 내적 “평화”, 그리고 내적 “기쁨”을 누리는 내적인 나라입니다.
O 그래서 눅17:20-21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오는 것이 아니니라, 또 사람들이 보라 여기 있다 또는 저기 있다고도 말하지 못하리니 보라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O 다시 18절에 [이러한 것들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쁨이요, 사람들에게는 인정을 받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러한 것들로] 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러한 것들]이란, 바로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 받으시고 또 [사람들]도 이런 사람을 인정하고 존경하는 것입니다. O 그러나 이것이 말과 같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기만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주의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주의 환경들이 자신을 대적하고 괴롭히며 화평하지 못하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성숙하고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기쁨을 상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O 19절에 [그러므로 이제는 화평을 위한 일과 서로를 세워 주는 일들을 따라야 할지니라.]라고 말씀 하십니다. 다른 사람들과 화평을 유지하고 서로를 세워 주는 일들을 따라 하라고 충고하고 있는 이 말씀은, 바로 그리스도인들 안에서 행하는 그리스도인 형제들끼리의 행동 지침입니다.
O 다시 말하면,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이 구원도 받지 못한 세상들과 지내면서 그렇게 지켜야 할 지침을 말씀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8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이 [성령 안에서]라고 못 박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엡4:3절에서는 [화평의 띠 안에서 성령의 하나 됨을 지키도록 열심히 노력하라]고 바울은 말하는 것입니다. O 20절에 [음식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망치지 말라. 사실은 모든 것이 깨끗하지만 남을 실족케 하며 먹는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악이니라.]라고 말씀 하십니다. 먹는 음식 따위와 같은 사소한 일 때문에 분쟁을 이르켜 형제를 망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일]을 망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O 이것은 먹는 음식과 같은 사소한 일은 사소한 일로 끝내고 넘어가야지, 그 작은 일이 무슨 큰일이나 되는 거처럼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을 문제 삼다 보면 큰 일로 번져 부질없이 평지풍파를 일으키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소한 일을 쓸데없이 분쟁을 일으키지 말로 사소한 일은 그저 단순하게 사소한 일로 끝내라는 말입니다.
O 21절에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네 형제를 실족하게도 아니하고, 성나게도 아니하며, 연약하게 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라고 말씀 하십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규칙을 제시합니다. O 고기를 먹는 것이 만약 [네 형제를 실족하게] 하는 일이라면, 고기를 먹지 말라,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만약 [네 형제를...성나게] 하는 일이라면,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 [무엇]이 만약 [네 형제를....연약하게]하는 일이라면, 그[무엇]도 하지 않는 것이 잘하는 일이다. 라는 말입니다. O 이것이 바로 규칙입니다.
O 그런데 문제는 그 [무엇]이라는 것이, 우리의 인생에서 [무엇]이냐? 하는 점입니다. 그 [무엇]이라는 것이, 우리의 인생에서 별 의미가 없는 사소한 일이라면 구태여 그것으로 인하여 [네 형제를 실족하게도 아니하고 성나게도 아니하며 연약하게 하지도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에서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는 것은, 우리들과의 교제에 금이 가게 하여 서로 마음을 열고 지내지 못하는 사이가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 형제가 하나님과의 교제마저 단절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특히 아직 성숙하지 못한 연약한 형제가 우리들의 행위에 대해 실망하거나 분노를 느낀 나머지 우리와의 교제를 끊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아예 그리스도인 전체를 증오하고 위선시한 나머지 나중에는 하나님과의 관계마저 금이 가서 주님과 온전한 교제를 갖지 못하게 되는 수가 많습니다.
O 이런 경우를 두고 이 구절에서는 형제를 [실족하게]하였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형제를 [성나게]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우리들을 마치 마귀나 되는 것처럼 악한 사람으로 보게 만든다는 뜻이며, 형제를[연약하게] 한다는 것은, 형제가 우리와는 생각이 전혀 다른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을 따라 행동 하도록 강요함으로서 그의 선한 양심이 무시당한 수준에서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양심이 그 스스로에게 짓밟히도록 만든다는 뜻입니다.
O 그 반면, 다른 형제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치 않은 우리들의 언행을 보고 실망한 나머지 우리들과의 교제를 끊는 선에서 머무르지 않고 그리스도인 전체를 업신여기고 혼자 고립되도록 만드는 것 역시 그 형제를 [연약하게] 만든 것입니다. O 연약한 그리스도인일수록 그 특성이 분명한데 그것은 바로 바리세적 특성을 나타났다는 말입니다. 거꾸로 말해서, 그리스도인이 바리새인 같은 특성을 나타내면 그는 아직 연약한 그리스도인 것이라는 말입니다.O 22절에 [네게 믿음이 있느냐? 그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신이 승인하는 일로 자신을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O 성경은 지금 우리에게 [믿음이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O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하나님, 실질적으로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0 그래서 [믿는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을 의존하고, 신뢰한다는 말입니다. 히 11:7절에 보면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해]라고 말씀 하십니다. O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지나간 것에 대해서는 믿음을 행사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아직 보지 못한 일들] 즉 미래의 일들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래에 어떻게 되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 현재에 믿는 것이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미래에 것을, 현재에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믿음이 있느냐?]고 묻고 있는 것은 우리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그것을 믿음으로 행하고 있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O 그렇다면, 그 믿음으로 계속 행하되, 그 믿음으로 남에게 영항을 끼치려고, 다른 사람들에게 믿음을 과시하려고 애쓸 필요 없이, 하나님만이 아시게 그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고 충고합니다.
0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들의 믿음을 아시니까 구태여 다른 사람에게 우리의 믿음을 과시하고 영항을 미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O [자신이 승인하는 일로 자신을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들이 갖고 있는 믿음의 양심에 비추어 볼 때, 다른 형제가 행하는 어떤 일이 옳지 않다고 판단되는 데도 그 형제는 또 자기 나름대로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옳다고 생각하고 그 일을 행합니다. 그렇다면, 그 형제가 자기 양심대로 하도록 내버려두고 그것을 문제 삼지 말라는 말입니다.O 우리들은 우리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믿음대로 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믿음에 비추이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데도 어떤 이유로든 그 일을 행한다면, 자신이 승인하는 일로 자신을 정죄 하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면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O 23절에 [그러나 의심하는 자는 그가 먹을지라도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먹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니라. 믿음으로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O 우리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옳다는 확신이 서지 않은 채[의심하는 자]의 입장에서 있으면서도 다른 형제를 위한답시고 우리의 양심에 반하여 어떤 음식을 먹거나 어떤 일을 행한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우리 스스로를 [정죄]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믿음으로]먹거나 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O 자신의 믿음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자신의 믿음을 스스로 짓밟는 행위이기 때문에 이것은 [믿음으로...아니하였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요, 따라서 우리 스스로를 정죄한 것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라고 이 구절은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O 그래서 믿음의 양심에 비추어 조금이라도 의심스럽다면 손대지 않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심하면서도 그 의심 속에 행하는 사람을 우리는 창세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창27장에 보면 늙어서 눈이 침침하여 자기 아들들도 누가 누구인지 눈으로 잘 식별을 할 수 없었던 이삭은 큰 아들 에서에게 사냥한 고기로 자신이 좋아는 별미를 만들어 오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먹고 죽기 전에 축복해 주겠노라고 말합니다. O 그러나 이 말은 엿들은 리브가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별미를 손수 만들어 야곱의 손에 들려 아버지께로 들어 보냅니다. 이삭은 아무래도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고 첫 번째 의심을 표명합니다. 야곱은 자신이 에서라고 대답합니다.
O 이삭은 [네가 어떻게 그처럼 빨리 잡았더냐]고 두 번째 의심을 표명합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빨리 잡도록 하셨다고 말합니다. 이삭은 그래도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내 아들아 내게 좀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만져봐야겠다, 고 말합니다. O 이삭은 야곱을 만지면서도 여전히 의심을 늦추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로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리인데 손은 에서의 손이라]고 의심을 표명합니다. 이삭은 극도의 의심을 나타냅니다. 다시 말하면, 이삭은 지금 음식을 가지고 들어온 이, 아들이 야곱이 아니라 "에서"라는 것을 아직까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삭 앞에 놓은 음식은 의심받는 음식이었습니다.
O 그러면서도 결국 이삭은 그 의심의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에서에게 해줄 축복을 야곱에게 해 줍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입장에서 보면, 명백한 이삭의 실수였습니다. O 아무리 이삭이 눈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에서와 야곱을 구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야곱이 에서의 옷을 입고, 염소 털로 에서처럼 변장을 했다 하더라도 이 녀석이 에서인지, 야곱인지 분별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혼미하지는 안했습니다. O 그래서 이삭의 말을 종합해 보면, 이삭은 지금 음식을 들고 온 이 아들이 “에서”가 아니라, 바로“야곱”이라는 것을 의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이삭은 그 음식이라고 받아먹었던 것입니다. 이삭은 의심을 하면서, 의심스러운 마음으로 가지고 그 음식을 먹었다는 말입니다.
O [믿음으로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무엇을 먹었든지, 무엇을 행했든지 믿음으로 하지 아니한 것들은 죄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규칙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이 규칙을 위반했던 것입니다. O 그래서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인가?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일을 하도록 허용하시고 계신 것인가? 우리들이 하는 일은 정녕 하나님의 말씀이 인정하고 있는 일인가? O 그렇다면, 그 일을 반듯이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지금 옳은 궤도를 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야 뭐라고 아우성을 치든 말든 그것은 전혀 의식할 필요도 없고 상관할 필요가 없습니다.
O 그러나 내가 하는 그 일을 복되게 하시고 은총을 내려 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할 수 없다면, 그 일은 무엇인가 잘못된 일이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일은 결코 우리가 믿음으로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는 것은 주께서 인정하시고 주께서 복 주시기에 합당한 일입니다.
0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하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이 일에 복주시기를 기도할 수 없는 일, 믿음으로 할 수 없는 것, 그래서 내가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모두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일을 복되게 하시고 은총을 내려 달라고 우리들이 하나님께 요청할 수 없다면, 그 일은 무엇인가 잘못된 일이므로 그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단호하게 그만 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의 사람은 주께서 신선하고 새로운 길로 그를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이런 규칙 안에서 모든 것을 [믿음으로 행하므로] 주께서 영광을 돌리는 삶, 주님의 인생을 위해 사는 그런 삶을 살다가 주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때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해서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