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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 마음의 열성을 알기 때문이라.

박종각 2020. 4. 20. 00:00

                내가 너희 마음의 열성을 알기 때문이라.

 

              
                                  고후9:1-5절 말씀입니다.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대하여서도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으니 2이는 내가 너희 마음의 열성을 알기 때문이라. 내가 너희를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자랑하기를 “아카야에서는 지난해부터 준비했노라.”고 하였으니 너희의 열성이 많은 사람을 분발케 하였느니라. 3그러나 내가 형제들을 보낸 것은 이 문제에 있어서 너희에 대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요, 내가 말한 바와 같이 너희로 준비하게 하려 함이니라. 4혹시 마케도니아 사람들이 나와 함께 갔다가 너희가 준비되지 아니한 것을 알면 우리가 (우리가 너희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이같이 자신 있게 자랑하는 일에 수치를 당하게 될까 함이라. 5 그러므로 나는 그 형제들에게 권하여 그들이 너희에게 먼저 가서 너희가 전에 알려 준 너희의 연보를 미리 준비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노라. 이렇게 준비하는 것이 연보 같고 억지로 한 것 같지 아니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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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본문 5절에 보면 [그러므로 나는 그 형제들에게 권하여 그들이 너희에게 먼저 가서 너희가 전에 알려 준 너희의 연보를 미리 준비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노라. 이렇게 준비하는 것이 연보 같고 억지로 한 것 같지 아니하니라.]고 말합니다.


0 본문 고후 9장은 [베푸는 것]에 관한 교리적 진리들을 우리들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믿음의 형제들, 성도들을 위해 준비한 연보를 가지러 마케도니아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롬15:26절에 [이는 마케도니아와 아카야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위하여 기쁨으로 얼마를 기부하였음이니라.]고 말합니다.


0 행11:29절에서도 [그때에 제자들은 각자 능력에 따라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구호금을 보내기로 결정하고]라고 말하면서, 다시 행12:25절에서는 [그때 바나바와 사울이 그들의 임무를 마치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왔는데“마가”라고 하는“요한”도 데리고 왔더라.]고 말합니다.





0 여기서 말하는“바나바와 바울의 임무”는, 예루살렘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구호금을 전달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임무를 마치고 돌아올 때,“마가라고 하는 요한도 데리고 왔더라.”고 말합니다.“마가”는, 바울의 동역자인“바나바”의 조카인데(골4:10),“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에 구호금을 전달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마가”을, 안티 옥으로 데리고 온 것입니다. 그래서“마가”는, 선교사의 조력자가 되었습니다.(행13:5)


0 그러나“마가”는, 선교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박해와 고난에 겁을 먹고“팜필리아”에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행13;13)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는 많은 고난 속에서 1차 선교여행을 끝내고 안티 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던 마가 역시, 다시 안티 옥으로 돌아와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있게 되었습니다.


0 그리고“바울과 바나바”는, 다시 2차 선교여행을 준비하게 되었는데, 이때“바나바”는, 다시 “마가”를 데리고 가려고 하지만, 그러나 바울은 이를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바울이 반대한 이유는“팜필리아 에서 떠난 사람을 선교사역에 다시 데리고 가는 것은 마땅치 않다.”것이었습니다.(행15:38) 그리고 그 일로 바울과 바나바는 심한 의견 대립이 있게 되었고, 결국 이 문제로“바울과 바나바”는,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0 그래서 바울은“실라”를 데리고“시리아와 킬리키아”로 떠났고(행15:41), 바나바는,“마가”를 데리고“쿠프로”로 떠나게 되었던 것입니다.(행15:39). 그러나 그 일이 있는 후, 바울의 마음에는 항상“마가”의 문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잠시 마가를 자신의 사역에 참여 하게 합니다.(골4;10;몬1:24) 그러나 결국 바울은“마가”를, 골로새 성도들에게 보내면서 그를“영접하라.”고 말합니다.(골4:10)


0 바울은 그 이후로, 자신의 사역에“마가”를 부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가의 일은 바울의 마음에서 오래토록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의 모든 사역을 정리하는 마지막 과정에서“마가”를 다시 부릅니다. 그래서 딤후4:11절에서 디모데에게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는 내 사역에 필요한 사람이니라.]고 말합니다.


0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정리하면서“안티옥”에서 있었던 그 일에 대해서 그를 위로해 주면서 특별히 그에게“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의 지식”을 좀더 가르쳐 주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마가”가,“마가복음”을 기록한 것입니다.





0 예루살렘을 시온성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신앙의 어떤 문제가 일어날 때는 바로 여기 예루살렘에서 최종 결론을 내려주고(행15:1-2.5-22), 또 지도자들을 파송하며, 그리고 잘못된 것들을 바로 지도하는 일을 예루살렘에서 하는 것입니다.(행15:23-31) 그래서 예수님은 요4:4:22절에서 [너희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을 경배하고, 우리는 우리가 경배하는 것을 아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0 그러나 예루살렘에 사는 성도들은 이방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가난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형제들은, 영적인 것으로 이방의 모든 사람들을 돕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그 외의 이방의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에게 영적으로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 지역에서는 물질적인 것으로 예루살렘에 형제들을 도울 의무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0 그래서 바울은 롬15:27절에서 [그들은 진실로 기뻐하였으며 또한 저들에게 빚진 자니 이는 이방인들이 저들의 영적인 것에 참여하였으면 그들의 의무는 또한 물질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임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복음으로 큰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물질적으로 도움을 줘야 하는 것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이요, 그리고 이것이 주께서 정하신 추수의 법칙인 것입니다.(행24:17.롬15;25.25.27;고전16:3)  0 바울은 이 일에 대해서 매우 열심히 가르쳤던 것입니다.(갈2:10) 왜냐하면, 성도들의 복은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고, 그리고 성도가, 성도로 사는 방법이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0 바울은 오늘 본문 3절에서 마케도니아사람들에게“아카야”에서는 작년부터 연보를 모았다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아카야”는 고린도를 말합니다. 고린도는 아카야 지역에 소재한 중요 도시입니다. 당시 아카야의 총독은“가이오” 이었습니다.(행18;12)] 고후 8장에서 보면, 그때 마케도니아 사람들은, 큰 환난의 시련 가운데 있기 때문에 심한 궁핍에 있었음에도 아카야 사람들에 대한 바울의 말을 듣고 오히려 힘과 용기를 얻어서 그 어려운 중에서도 서로들 자원하여 자신들의 능력이상으로 풍부한 연보를 해서 바울에게 주었던 것입니다.(고후8:1-6)


0 바울이 마케도니아에 가서 아카야 사람들의 열심을 말하는 중에, 그들은 이미 1년 전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고 자랑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린도인 들로 인해 바울의 마음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1년 전부터 하겠다고 약속했던 그 일이 지금 제대로 되어 가고 있지 않다는 의심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도를 보내서 “그들이 1년 전에 시작했던 그 은혜의 일”에 대해서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아보고, 그 일을 완성시키라는 것입니다.(고후8:6)


0 본문 5절에서도, 바울은 고린도인 들이 약속한 것을 모아 놓았는지를 확실히 해두기 위해“디도와 실라”를 앞서 보낼 예정이었습니다.(고후8:16.23) 물론, 그들이 주기로 한 연보는 그들 스스로가 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약속한지 1년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이제 바울은 그들이 모아둔 연보를 가질려 가려고 합니다. 이때 마케도니아 사람들도 바울과 함께 고린도인 들을 방문하게 될 것입니다.

 




0 그런데 바울의 걱정은, 자신과 함께 갔던 마케도니아 사람들이 고린도에 갔을 때 만약 그들이 1년 전부터 준비하겠다는 연보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들에 대해서 얼마나 실망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바울은 고린도교회라는 말을 하지 않고,“아카야에서”라고 말을 했습니다.
0“아카야”는, 매우 큰 도시이기 때문에 고린도인 뿐만 아니라, 여러 지역에 많은 형제들이 있습니다.


0 그래서 설령 고린도인들이 준비를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들이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수치를 당하지는 않겠지만, 그러나“아카야에서는 1년 전부터 준비한다.”고 자신 있게 자랑했던 바울이나, 아카야는 수치는 당하게 될 것입니다.


0 그래서 4절에[혹시 마케도니아 사람들이 나와 함께 갔다가 너희가 준비되지 아니한 것을 알면 우리가 (우리가 너희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이같이 자신 있게 자랑하는 일에 수치를 당하게 될까 함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바울이 고린도 인들에게 진짜 원했던 것은, 그들이 어느 지역 못지않게 그리스도인들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 주기를 원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고
  죄를 멀리 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