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고후6:1절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와 함께 일하는 자들로서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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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본문 1절에서 [이제 우리는 그와 함께 일하는 자들로서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은“일하는 자”라고 말하면서, 그 일은“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주님과 함께”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고전3:9절에서 바울은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살전3:2-3.빌4:3)
0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구원 받은 것과, 동시에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은 주님의“일꾼들”인 것입니다. [마20:1-7절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포도원 주인은 아침 일찍 6시에 일력시장에 나가서 일꾼들과 하루 품삯을 정하고, 일꾼들을 자기 포도원으로 들어 보내는데, 아침 6시부터 시작해서, 9시, 12시, 3시, 5시까지 무려 다섯 번이나 일꾼들”을 자기 포도원으로 불러 드립니다. 그리고 주께서는“천국은 마치 자기 포도원을 위하여 일꾼을 구하러 아침 일찍 나간 집주인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일하는“그리스도인들은 일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0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딤후2:6절에서는, 그리스도들을 수고하는 농부로 말하고, 또 고전3:10절에서는, 기초를 놓는 건축가로 비유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이 임무는“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는 말은,“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밭으로 나가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추수를 하거나, 아니면, 우리와 함께 건설현장에서 팔을 걷어붙이고 벽돌을 나르고 망치질을 하시는 것을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그 능력 안에서, 우리가“일”하는 것을 말합니다.
0 그런데 1절에서 바울은 고린도 인들에게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말씀 합니다. 오늘날 날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사도 바울은 지역 교회 안에는, 구원을 받은 사람들과, 구원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지역 교회에 편지를 쓸 때는, 이들 모두에게 적용되는 내용으로 쓰게 된 것입니다.
0 그래서 본문 1절의 말씀이, 만약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라면, [너희가 하나님의 은혜를 진실로 받아들이고 정말로 구원받기를 바란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만약, 구원받은 자들이라면, [너희가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는 너희가 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어떤 일이 너희에게 주어 질 것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0 그렇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자라면, 죄와 사망과 멸망에 있던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의 자리로 옮겨진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날에는 마귀의 자식이요, 지옥의 자식이었지만, 그러나 이제는 영원한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로, 하늘에 속한 백성이 되어 이미 주 안에서 천상에 주와 함께 앉아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0 그래서 엡2:6절에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천상에 함께 앉히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행11:26절에 보면, 안티 옥 사람들은,“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보고,“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이전에는, 이 지구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만 존재했습니다. 하나는,“이방인”이고, 다른 하나는“유대인”입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 아주 특별한 한 부류가 생겼습니다.
0 물론, 이들은“유대인”도 아니고, 그렇다고“이방인”도 아닙니다. 이들은“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생겨난 부류로, 그 십자가를 믿고 죄와 사망과 지옥의 멸망에서 구원받은“그리스도인”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분류되는 아주 특별한“그룹”이 탄생된 것입니다.
0그것이 바로“안티 옥”사람들에 의해서 최초로 불려 졌던 바로“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래서 이 지구상에서“그리스도인”은,“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생겨난 아주 특별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0 이들이 왜 특별한 존재인가? 그것은“죄와 사망과 멸망의 지옥으로부터 구원받은 이들은, 비록 이 땅에 살고 있지만, 그러나 그들의 삶의 목적은 땅이 아니라,“하늘의 목적”을 두고 사는 자들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0 그래서“그리스도인”이란,“새로운 목적”을 가지고,“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땅에서 사는“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구원이 없는 삶을 살 때는, 삶에 어떤 목적 같은 것은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이 없는 삶은, 이미 정해진 진행 방향에 따라“지옥 앞으로”라는 구호에 맞춰 지옥의 노래를 부르며 살다가 그 끝에 다다르면, 지옥으로 떨어지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0 혹 어떤 사람은 구원받지 않았어도“삶의 목적은 있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러나 그들의 모든 인생이 멸망하고 불타버리는 이 지구라고 하는 땅에서 끝장내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라면, 그들에게는 결코“삶의 목적”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만을 바라보고 사는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이 세상은 결국 그들에게 지옥을 안겨 줄 뿐인 것입니다.]
[0 그래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이 세상이, 자신들에게 무엇인가를 해줄 것이라고 큰 기대를 하고 세상을 바라보며 살지만, 그러나 그들에게 다가오는 것은 오직 지옥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내일이 없고, 내세가 없는 이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목적에 의해서 사는 삶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삶이란“허무한 것을 위하여, 허무하게 사는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그가 이 세상의 명예권세 부귀영화를 양손에 쥐고 아무런 두려움이 살든, 아니면, 처절한 가난 속에서 고난과 고통을 끌어 앉고 살든, 그가 구원받지 못했다면, 그의 삶의 목적은 지옥을 위해서 살고, 지옥으로 가지 위해서 살다가 결국 지옥으로 가는 것, 그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지 못한 삶은“허무한 것을 위하여” 허무하게 살다가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0 그래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자신들의 삶에 대해, 아무리 아름답고 그럴듯하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아무리 품위 있게 먹고, 품위 있게 말하고, 품위 있게 활동하며, 품위 있게 산다 할지라도, 그러나 그들의 결국은 지옥으로 가는 것, 그것이 바로 그들의 전부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것은 지옥으로 가지 위해서 존재하는 것,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0 그러나“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그 이름 자체에 아주“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그리스도인”이라는, 이 이름이 붙어졌을 때, 그는 아주 특별한 목적으로 가지고 사는“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0 그래서 안티옥 사람들은“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들보고“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행11:26). 왜냐하면, 그들은“그리스도”를, 전하는 아주“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0 그래서“그리스도인의 삶”은,“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고, 그분의 새로운 영광을 창출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고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구원받은 순간, 나는 주님 안으로 들어가고, 주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내 안으로 들어오시므로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나를 위해 죽으셨던 그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0 나를 위해서, 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주님을 믿는 그 믿음으로만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2:20절에서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나는 살아 있노라. 그러나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 내가 이제 육신 안에서 사는 삶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0 그래서 고전10:31절에서 바울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것은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다시 롬14:8절에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우리가 살든지 죽든지 우리는 주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죄와 사망과 멸망에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는“그리스도인의 삶”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그리스도인의 삶”의 시작은, 우리가 구원을 받은 바로 그“첫날”로부터 인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구원받은 그날로부터 내 삶이, 바로 주님의 삶이 되는 것이고, 주님의 삶이 곧 나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0 이전에는 땅만 있는 줄 알고, 그 땅만을 바라보고 살았는데, 그러나 죽었던 우리의 영이 성령으로 통해서 다시 생명을 얻고 하늘의 지혜가 우리에게 들어오고, 그리고 우리의 혼이 지옥으로부터 구원을 받고 보니까, 땅위, 하늘에는 또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고, 그리고 우리가 알게 된 또 하나의 사실은, 우리가 바라보고 살아야 할 것이, 멸망의 세상이 아니라,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저 하늘을 바라보며 그곳에 계신 주를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 3:1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으면 위에 있는 것들을 구하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0 그래서“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세상을 바라보며, 그곳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며, 그리고 그곳에 있는 것들을 구하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은, 바로 그 시간부터 휴거되는 그 순간까지, 우리를 구원해 주신“주 하나님을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매일 매일,“성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0 그래서 엡4:13절에서는 [우리 모두가 믿음의 하나 됨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지식의 하나 됨에 도달하게 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하지만, 오늘 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 반대로 삽니다. 그래서 자신이 구원을 받은 날이,“그리스도인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날이 자신의 영적 생활을 졸업한 날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신앙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주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알기도 전에, 주를 어떻게 섬기는 것인가를 배우기도 전에, 자신의 영적생활을 끝내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구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0 물론, 그들이 받았다 하는 그 구원에 대해서는 우리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면, 그들이 받았다고 하는 그 구원에 대해서 우리는 우리 마음에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십자가도 모르고, 갈보리 산도 모르고, 예수가 누구신지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0 사실 우리가 구원받았을 때, 그때 우리가 주를 아는 것은 단지“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나를 구원에 주시기 위해 갈보리 십자가에서 피 흘러주신 그 구원의 주 하나님을 아는 것”이 전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피로 구원받은 우리는 그날로부터 날마다 주를 섬기는 삶을 통해서, 하나씩 하나씩 주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생동안 주를 섬기며 배우는 삶이 바로“신앙생활”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일생동안 주를 배운다 해도 주 하나님을 얼마나 배우겠습니까? 0 오늘 날 사람들은 하늘의 별이 몇 개나 되는지를 아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들이 어떠한 방법을 다 동원한다해도 절대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별의 숫자를 알 수 없다는 사실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은, 하늘에 얼마나 많은 별이 있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이 많은 별의 숫자보다도 더 많은 것들을 알아야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0 하지만, 오늘 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졸업하고 세상으로 돌아가 전에 살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이 말하는“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은”자들인 것입니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고
죄를 멀리 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