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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일 예 배

박종각 2020. 3. 22. 00:00

                                          주   일   예   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라. 

 


                              계14:1-7절 말씀입니다.


O 본문 1-4절을 읽어 봅시다. [또 내가 쳐다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 산 위에 서 있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그의 아버지의 이름이 쓰여 있더라. 또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큰 천둥소리와도 같더라. 또 내가 하프 타는 자들의 하프 소리도 들었노라.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짐승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 같은 것을 불렀는데, 땅에서 구속을 받은 십사만 사천 명 외에는 그 노래를 배울 사람이 없더라. 이들은 여자들과 더불어 더럽혀지지 아니한 자들이니 이는 그들이 동정들임이라. 이들은 어린양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가는 자들로 하나님과 어린양께 첫 열매들이 되어 사람들 가운데서 구속을 받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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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계시록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계시록 안에서 환란을 두 번 거쳐 왔습니다. 한 번은, 계5-8장에서 “일곱 봉인”이고, 그 다음은, 계8:2절에서-11장까지 “일곱 나팔”입니다. 그 다음 세 번째 과정에서 성경은, 우리에게 적그리스도와 그의 활동을 보여 줍니다. 물론, 적그리스도는 계11장부터 계속 나와(11:7, 12장, 13장) 본문 14장에서도 역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14장에 들어가기 전에, 이 상황이 “후3년 반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0 물론 아시겠지만, “후3년 반”이라는 말을 좀 더 설명하면, 이스라엘백성들은 자신들의 왕으로 오신 예수를 거부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죄목으로 십자가에 못 밖아 죽이기를 빌라도에게 요청합니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한 것은, 예수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수백 년 전에 예언했던 그 메사야가 아니라, 그는 단지 나사렛 동래에서 목수의 일을 하는 요셉이라고 하는 사람의 아들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O 하지만 주께서는 자신이 바로 선지자들이 예언한 바로 그 메시야요, 그들의 왕으로 선포하시고, 그들에게 왕의 표적을 보여 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예수는 나사렛 동내 요셉의 아들로서 그가 행하는 기적들은 모두 마귀들의 힘입어 쫓아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막3:22). 유대인들의 눈으로 볼 때는 예수는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며 사기를 치는 사기꾼에 불과 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를 잡아 빌라도에게 죽어달라고 온 것입니다.





O 하지만 빌라도는 주께서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들의 요구를 거부합니다. 그러나 아우성치는 유대인들에 굴복한 빌라도는 결국, 주 예수님을 그들에게 넘겨주면서 한 가지 사실을 확실하게 해 둡니다. 그래서 그는 마27:24절에 [빌라도가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말하기를 “나는 이 의로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무죄하니 너희가 맡으라.”] 고 말합니다. O 그러자 이스라엘백성들은 마27:25절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받겠다.”고 소리를 칩니다. 그래서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었고, 그리고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입으로 소리쳤던 대로 그분을 죽인 죄 값으로 무려 2000년 동안이나 무서운 고통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O 그러나 그들의 죄 값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전무후무한 엄청난 고통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고통의 기간은 무려 7년입니다. 이것을 7년 대 환란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7년 대 환란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왕을 죽인 죄 값을 마지막으로 치루는 기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O 그런데 이 7년은, 각각 3년 반씩, 전, 후반으로 나눠서(단12:11.계11:2.3;12:6.;13:5). 앞에 3년 반을, “전3년 반”이라고 말하고, 뒤에 있는 3년 반을, “후3년 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7년이 이렇게 둘로 나눠지는 것은, 이 7년 동안 일어나는 환란이, 두 가지 패턴으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O 우리가 오늘 본문의 상황이 바로 “후3년 반” 임을 주목해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앞부분 7장에서 본144,000명이 다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들을 마지막 “봉인”이 떼어지기 전인 계7:4-9절에서 보았습니다. O 그래서 계7:2절에 보면, 한 천사가 동쪽에서 올라오는데 그 천사의 손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장을 가지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서, 한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씩, 모두 144.000명의 이마에 표시를 합니다. 천사가 가지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인장이기 때문에 그 인장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쓰여 져 있고, 그리고 이 인장을 받은 사람은 모두 그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이 쓰여 지게 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본문 1절에 [또 내가 쳐다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 위에 서 있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그의 아버지의 이름이 쓰여 있더라] 고 말씀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7장에서는 땅에 있었으나, 그들이 오늘 본문에서는 “셋째 하늘”에 올라가 있는 것입니다.


O 또, 계7:9-12절에 보면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보라, 모든 민족들과 족속들과 백성들과 언어들에서 온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그들의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큰 음성으로 소리 질러 말하기를 “구원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라고 하더라. 또 그 보좌와 장로들과 네 짐승 주위에 둘러선 모든 천사가 그 보좌 앞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 드리며 말하기를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세와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영원무궁토록 있나이다. 아멘.” 하더라.]고 말씀합니다.


O 이 장면 역시, 땅 위가 아니라 바로 “셋째 하늘”의 장면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등장하는 큰 무리는 모두 “휴거된 사람”들입니다. 계4:10절에도 보면, [스물 네 장로가 보좌에 앉으신 분 앞에 엎드려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분께 경배하며 그들의 면류관을 그 보좌 앞에 던지며 말씀드리기를]라고 말씀 합니다. 이 장면 역시 “셋째 하늘”입니다.





O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지금 요한은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셋째 하늘”에 들림 받아 있다는 것을 말씀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계4:1절에 보면, 요한은 하늘에 한 문이 열리면서 “이리 올라오라.”는 음성을 듣고 곧바로 하늘로 휴거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휴거되고 난 후, 계7:4절에 보면, 그때 144.000명이 처음 언급되었을 때, 그들은 환란을 통과하는 땅에 있었지만, 오늘 본문1-3절에 보면, 그들은 모두 휴거되어 하늘에 올라가 있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입니다.


O 또, 1절에 [어린 양이 시온 산 위에 서 있고...]라고 말씀 하십니다. 여기에 나오는 이 “시온 산” 역시, 땅에 있는 “시온 산”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히12:22절에서, [그러나 너희는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무수한 천사들과]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이곳은 바로 북쪽 하늘에 있는“하늘의”도성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배웠습니다.


O 그렇습니다. 여기 이 시온산은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북쪽을 가리키는 “우주의 산”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산을 성경은 “거룩한 산”이라고도 말씀합니다. O 그런데 사탄은 처음부터 이 “거룩 산”꼭대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겔28:14절에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이라 내가 너를 그렇게 세웠더니 네가 하나님의 거룩한 산 “위에” 있었고 네가 불의 돌들 가운데를 위아래로 걸었도다]라고 말합니다.





O 성경에서 “위에”라고 방향을 말할 때, 그 위쪽은 언제나[북쪽]을 말한다는 우리가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북쪽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75:5-7절에 보면, [이는 높이는 일이 동쪽에서나 서쪽에서나 남쪽에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씀 하시면서 “북쪽”에 들어갈 자리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대체하면서 [오직 하나님께서 재판장이시니 그가 한 사람은 낮추시고 다른 사람은 세우시는 도다.]라고 말씀 하십니다.


O 성경은, 세 개의 하늘들을 말씀 하십니다. 첫째 하늘은, 구름들이 있는 영역을 말합니다. 즉, 새가 날아다니고 구름이 떠 있는 하늘, 즉 우리의 시계에 들어온 하늘을 첫째 하늘이라고 말합니다. 둘째 하늘은, 천체가 있는 하늘을 말합니다. O 태양계가 있는 하늘,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이 있는 하늘이 둘째 하늘입니다. 그리고 셋째 하늘은, 하나님께서 계신 하늘들의 하늘 즉.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하늘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곳이 바로 우리들이 가는 곳입니다.


O 그런데 둘째 하늘과, 셋째 하늘 사이에는 엄청난 양의 ‘물 층’이 있다는 것을 창세기를 공부할 때 배웠습니다. 그래서 창1:7-8절에 [하나님께서 창공을 만드시고 창공 위에 있는 물들에서 창공 아래 있는 물들을 나누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께서 창공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과 아침이 되니 둘째 날이더라.]고 말씀 하십니다. O 이 물 층을 성경에서는 “깊음”(deep)이 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창1:2절에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 어두움이 깊음의 표면에 있으며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에서 거니시더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이 “깊음의 물"이 터져 150일 동안(창7:24), 지구가 잠기는 대 홍수가 일어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노아의 홍수였습니다.





O 그래서 창7:11-12절에 [노아의 생이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그 달 십칠일, 그 날에 모든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고 하늘의 창들이 열렸으니, 비가 땅에 사십 일 낮과 사십 일 밤을 내렸더라]고 말씀합니다. 이 “깊음의 물”이 어느 정도인지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한 가지 예를 든다면, 이 “깊음의 물”을, 한강에 비유한다면, 이 “지구”는, 그 한강에 떠 있는 “축구공”에 비유 될 수 있습니다.


O 그런데 지금 [어린 양이 시온 산 위에 서 있고]라고 말씀합니다. 이 어린 양은 희생 양으로 죽으셨던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 하십니다. 이 분께서 시온 산에 지금 서 계시는 것입니다. 이 시온산은, 북쪽 하늘에 있는 “우주의 산”이면서 이곳은 왕의 도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48:2절에 보면, [북편에 있는 위대한 왕의 도성 시온 산은 그 자리 잡은 곳이 아름다우며 온 땅의 기쁨이니]라고 말씀 합니다. 이곳이 바로 “셋째 하늘”입니다. 그리고 셋째 하늘의 방향은 “북쪽” 인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북쪽을 가리키는 나침반 바늘의 끝에는 파란색이 칠해진 이유입니다.


O 그 바늘 끝이 북쪽을 가리킴으로써“셋째하늘”이 그 방향에 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북두칠성은 밤마다 인간들에게 주께서 계신 “셋째 하늘”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인간들은 무관심합니다. 그렇습니다. 휴거된 144.000명이 지금 있는 곳은 북쪽 방향을 향해 빛의 속도로 15억년동안 가야 비로써 도착할 수 있는 바로 셋째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O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가 어린 양으로 묘사된 것을 다시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양이 시온 산 위에 서 있고]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그들과 함께 계시는 분은 바로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O 2절에 [또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큰 천둥소리와도 같더라. 또 내가 하프 타는 자들의 하프 소리도 들었노라.]라고 말씀 하십니다. 하늘에서 그들은 악기로 주님을 찬양하는데 “하프”가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계15:2-3절에서 다시 나타납니다. 3절에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짐승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 같은 것을 불렀는데, 땅에서 구속을 받은 십사만 사천 명 외에는 그 노래를 배울 사람이 없더라]고 말씀 합니다. 이 무리는 매우 특별한데 그 이유는 144,000명을 제외하고, 이 노래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가 어떤 노래인가는 계15:3절에 나타나는데, 그것은“모세의 노래”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약 모세의 율법과 관계있는 것입니다.


O 그리고 그들은 “모세의 노래” 뿐만 아니라, 또 “어린 양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래서 계15:2-3절에 [내가 보니, 불로 뒤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그 짐승과 그의 형상과 그의 표와 그의 이름의 숫자에 대하여 이긴 자들이 하나님의 하프들을 가지고 유리 바다 위에 섰더라. 그들이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와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며 말하기를 “전능하신 주 하나님, 주의 행하신 일이 위대하고 놀라우니, 성도들의 왕이여, 주의 길은 의롭고도 진실하나이다]고 말씀 합니다. 그리고 모세의 노래는 신명기 32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O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가하면, 이 무리들은, 모두 환란 가운데서 “믿음을 통한 은혜”에, “모세의 율법”을 더하여 구원받는 자들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기 이 사람들은, 환란 가운데서 율법인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동시에, “예수의 믿음”을 가지고 “짐승의 표”에 반대해서 “끝까지 견디어” 얻는 “구원” 받은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O 그래서 본문 12절에 보면,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가 있으며 여기에 하나님의 계명들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이들은 모세의 노래처럼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고, 어린 양의 노래인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믿음과 행위”가 아니라, 오직 하나, 즉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O 4절에 [이들은 여자들과 더불어 더럽혀지지 아니한 자들이니 이는 그들이 동정들임이라 이들은 어린 양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가는 자들로 하나님과 어린 양께 첫 열매들이 되어 사람들 가운데서 구속을 받았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 선택되어 모인 자들은 모두 미혼 남성으로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 하였음”을 우리는 주목해야합니다.


O 그리스도인들을 뜻하는 그리스도의 몸, 주의 몸은, 고후11:2절에서 “순결한 처녀”로 불립니다. 그래서 이들과 우리 그리스도인들과의 차이는, 그것이 교회 시대와, 환란을 구분하는 차이고, 또 “은혜로 구원받느냐?” 아니면, “행위로 구원 받느냐?” 하는 차이입니다.


O 우리가 마25:1절에 보면, [그 때에 천국은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명의 처녀와 같으니라]고 말씀 합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이 열 처녀들이 그리스도인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열 명의 처녀 즉 “처녀들”은, 주님의 신부인 그리스도인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신부들은 이미 그 집 안에 들어 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단지 신랑을 맞으러 나가는 “들러리들”인 것입니다. O 그래서 마25:6절에 [한 밤중에 소리가 나기를 ‘보라, 신랑이 오니 나가서 맞으라, 하더라]고 말씀합니다.





O 여기 본문의 144, 000명도, 역시 마태복음 25장에서 말씀 하시는 무리인데, 이들은 바로 “환란성도들”입니다. 이들은 환란에서 “끝까지 견뎌서” 신랑이 올 때 “그를 맞이하기 위해” 들림 받는 “처녀들”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환란 때 “끝까지 견뎌서” 모세의 율법을 지키고 “모세의 노래”를 부르는 동정들인 것입니다. 이들은 신랑이 땅을 차지하려고 돌아올 때, 다시 말하면, 주께서 재림 하실 때 그를 맞이하기 위해 들림 받는 것입니다.


O 그래서 본문1-4절은, 환란에서 선택된 성도들의 무리로, 모세 율법을 지키며 “동정들”로 불리고, 144,000명이며, 이들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 속해 있습니다. 이들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할 뿐, “신랑과 결혼”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부인 순결한 처녀의 “친구들”이기 때문입니다.


O 그래서 시45:13-15절에 [왕의 딸이 안에서 온갖 영화를 누리나니 그녀의 옷은 금으로 수놓았도다.  그녀가 수놓은 옷을 입은 왕께로 인도될 것이요, 그녀를 따르는 그녀의 동료 처녀들도 왕께로 인도되리니 그들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도되어 왕궁으로 들어가리이다.]라고 말씀 하십니다.





O 다시 5-7절에[그들의 입에서 교활함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흠이 없기 때문이라. 또 내가 보니, 다른 천사가 하늘 한가운데로 날아가는데 그가 땅에 사는 자들과 모든 민족과 족속과 언어와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큰 음성으로 말하기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분의 심판의 때가 이르렀음이라.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의 원천들을 지으신 그분께 경배드리라.”고 하더라.] 고 말씀합니다.


O 5절에, [그들의 입에서 교활함을 찾아볼 수없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홈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재림 직전의 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환란성도들은 “끝까지 견디었고”(마24:13),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음으로 마침내 “사탄을 이겼으며” 그리고 이들은 “모세의 율법”을 지키고(마 24장. 계11,12,14,22장). 또, “주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세주로 믿어서 구원받는 것입니다.


O 왜, 그들이 끝까지 견뎌야 구원을 받는가 하면, 물론, 이들은 환란을 통과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러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성령으로 할례”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할례를 받지 않는 자들은, 그들이 설령 주 예수를 구세주로 믿었다 할지라도 그들의 몸을 통해 “행위로 끝까지 견디면서 인내로 성결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아니고 신랑을 맞이하러 나가는 들러리들이기 때문에 환란 끝에 그들은 들림 받아서 신랑을 맞는 것입니다.





O 6절에 “하늘 한 가운데로” 날아가는 이 천사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그런데 이 복음은 “바울이 전한 복음”이 아닙니다. 본문은 이것을 “영원한 복음” 이라고 말합니다. 막16:15절에 보면, 주께서 제들에게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O 하지만 제자들에게 주신 이 사명을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온전하게 해 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을 통해서 계시될 은혜의 복음이 아직 바울에게 계시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자 중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행9:2절까지 이어집니다.


O 그리고 주께서 바울에게 은혜의 복음을 계시하시기 까지는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전하는 복음은 구약의 계시에 의존해서 전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가 복음을 전할 때, 베드로는, 단지 구약의 계시에 의해만 전파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직 “새로운 언약”이라고 하는 “은혜의 복음” 즉, 주님의 십자가 이후, “피의 구속”에 대한 계시가 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O 다시 말하면, 주님의 십자가 이후로 있어야 할,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은혜의 복음이 아직 계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언, 다윗의 예언, 요엘의 예언 등에 의해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은혜의 복음에 의해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구약의 예언에 의해서 전해지는 것으로 온전하게 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O 그러나 갈라디아서 1장에서 마침내 바울은, 베드로가 전하지 않은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마침내 바울이 주께로부터 은혜의 계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O 그래서 바울은 고전15:1-5절에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이제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았고 그 안에 선 것이라. 만일 너희가 내가 전한 복음을 굳게 잡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다면 복음을 통하여 너희도 구원받은 것이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달하였나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셔서 게바에게 보이시고 그 후에 열두 사도에게 보이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O 바울은 갈1:12.16-17절에서 [나는 그것을 사람에게서 받지도 않았고 배우지도 않았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된 것이라. 나로 하여금 이방 가운데 그를 전파하도록 내 안에 그의 아들을 계시 하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라고 말합니다. O 또, 갈2:2절에서 바울은 [내가 계시를 따라 올라가서 이방인들 가운데서 전파한 복음을 그들 앞에 제시하였으되 유명한 사람들에게 따로 전한 것은 어떻게 하든지 내가 달려가야 할 일과 달려갔던 일들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O 그렇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과, 갈라디아서 l장에서 전파할 때,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의 계시를 받은 것을 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이 마침내 사도행전의 과도기에서 이방인들에게로 넘어가면서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대 즉 이 교회 시대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의 계시를 받아 그의 서신서들을 쓸 때는 사도행전의 후반부입니다. O 그리고 그때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전혀 알지 못한 일들을 바울은 주께로부터 계시를 받아 기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계시록 14장에서는 한 천사가 또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은 네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입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전해지는 것입니다.





O 이 복음은 하나님은 믿음으로 그분을 신뢰하는 어떤 죄인이라도 은혜로 구원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그래서 롬4:5절에 [행함이 없어도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그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O 둘째는, 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 롬2:16절에서 바울은 “나의 복음”이라고도 부릅니다. 바울의 “나의 복음” 은 거듭난 성도들로 구성된 불러냄을 받은 교회, 즉 그리스도의 참된 몸에 대한 위대한 계시를 보여주고 있는 복음입니다. O 세 번째는, “왕국 복음” 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에게 전한 지상에 실현될 복음입니다.


O 그리고 네 번째로 마지막 복음은“영원한 복음”입니다. 이것은 미래의 이방인들에 대한 “회개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복음의 네 가지 형태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천국 복음”과, 구원받지 못한 죄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게 주신 바울의 복음인 “나의 복음“을 소유하며, 환란 때의 이방인들에게 주신 “영원한 복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O 또 7절에 보면 [큰 음성으로 말하기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분의 심판의 때가 이르렀음이라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의 원천들을 지으신 그분께 경배 드리라”]고 말씀 합니다. O“하나님을 두려워하며”라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두려우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계속해서 [두려워하라]고 성도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두려워하라는 말씀이 수 백 번도 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 앞에서 그분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0 성경에서 [두려워하라]고 말씀 하셨다면, 거기에 어떤 변명이나, 어떤 이유도 부칠 생각 말고 우리는 무조건 그분을 두려워해야하는 것입니다. O 한 천사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 천사는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하늘 한 가운데로 날아가면서 땅에 사는 자들과 모든 민족과 족속과 언어와 백성에게 큰 음성으로 외칩니다. 0 무엇이라고 외칩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라.]고 외칩니다.

0 왜냐하면, “그분의 심판의 때가 이르렀기 때문이라고”말면서 천사는 다시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의 원천들을 지으신 그분께 경배 드리라.]고 외칩니다. 주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입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것과 주께 영광 돌리는 것, 주를 두려워하는 것과 주를 경배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주께서 경배해야 합니다. O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왔음을 깨닫고,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에서 하늘과 바다와 물의 원천들을 지으신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 분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다가 주께서 공중으로 임하실 때, 그곳으로 들림 받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