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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는 신부

박종각 2020. 2. 9. 00:00

                         왕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는 신부

 


                                          주    일     예    배              
                                          에1:1-9절 말씀입니다.


[아하수에로 때의 일이라. (이는 인도에서부터 에디오피아까지 일백이십칠 개의 지방을 치리한 아하수에로라.) 2그 당시에 아하수에로왕이 수산궁에서 그의 왕국의 보좌에 앉았는데 3그의 치리 제삼년에 그가 그의 모든 고관들과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었으니 페르시아와 메디아의 권세 있는 자와 지방들의 귀족들과 고관들이 그의 앞에 있더라. 4 왕이 많은 날, 즉 일백팔십 일 동안 그의 영화로운 왕국의 부와 그의 훌륭한 위엄의 영예를 나타내더라. 5이 날들이 다 끝나자 왕이 수산궁에 참석한 크고 작은 모든 이들에게 왕궁의 정원 뜰에서 칠 일간 잔치를 베풀었는데, 6거기에 가는 자색 베줄로 은고리들과 대리석 기둥들에 맨 백색, 녹색, 청색 휘장들이 있고 홍색과 청색과 백색과 흑색 대리석 위의 침상들은 금과 은으로 되어 있으며 7 그들에게 금 그릇으로 마시게 하였는데 (그 그릇들이 각각 다르더라.) 왕의 형편을 따라 왕의 포도주가 풍부하더라. 8 마시는 것도 법대로 하여 아무도 강요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왕이 그의 궁의 모든 관료들에게 그렇게 명하여 각 사람이 좋은 대로 하게 하였기 때문이더라. 9왕후 와스티도 아하수에로왕에게 속한 왕궁에서 여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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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에스더는, 유대인들이 포로에서 돌아온 이후에 기록된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이렇게 세권의 역사적인 책들 가운데 마지막 책입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서는, 바빌론 포로에서 유대 땅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말하고 있고, 에스더는, 바빌론과 페르시아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던 유대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말하고 있는 책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약 B.C.485-455년경에 기록되었습니다. O 에스더에서는, 성경 대부분의 다른 책들과는 구별되는 특징들이 있는데, 먼저, 책 이름에 여성 이름이 들어 있는 두 권의 책들 중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잘 아는 “룻기”입니다. 이 두 책은, 모두 예언적면이나, 역사적인 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결혼”을 다루고 있습니다. 룻기에서는, 모압의 한 이방 여인이, 한 유대인 남자와 결혼함으로써 모형 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O 그런데 에스더에서는, 반대로 한 이방인 왕과, 결혼할 유대인 처녀를 보여 줍니다. 결과론 적으로 본다면, 이 유대인 처녀는 유대인들을 대학살로부터 구원할 임무를 띠고 왕궁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마지막 순간이 오기까지는 하나님 외에는 본인이나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실행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는 언제나 인간들에게는 숨겨져 있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에스더에서는,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이나, 혹은 “주”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는, 에스더에서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강물처럼 흘러넘치고 있으면서 매 순간 마다 하나님의 위대한 손길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O 그러므로 에스더에서에서 우리가 얻는 교훈은, 우리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우리의 귀에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고, 우리 손에는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을 지라도, 그러나 주께서는 주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우리의 삶의 모든 환경을 관장하고 계시시면서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 일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에스더에서는 전면에 나타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마치“무대 뒤에서” 땀 흘리시며 분주하시게 일하시는 분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에스더는, 구약이면서도 오늘날 신약의 성도들에게서 실제적으로 적용 되는 것입니다.





O 그 이유는,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성령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고 우리의 지극히 평범한 매일의 삶 속에서, 매일 같이 일어나는 하나하나의 사건들을 통해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강력하게 역사하시고 계시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에스더에서는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거나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시는 것이나,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나 걸으며, 중풍병자가 치유되어 자리를 들고 일어나는 일 같은 것은 없습니다. 단지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일들만이 일어납니다.0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잔치를 하거나, 어떤 사람은 그 잔치에 초대를 받고도 거부하거나, 어떤 사람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도록 이리 뒤 척, 저리 뒤척거리다가 날을 샌 다거나, 어떤 사람은 자기 목적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아침 일찍부터 누구를 찾아 가는 일 들입니다.


O 그래서 겉으로 보면, 이들 중 어떤 것도 특별한 것이 없는 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하나 둘씩 일어나는 보통의 일들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특별하게 보이지 않는 이들 각 사람들이, 그때그때 내린 자신들의 결정들은, 한 민족 전체의 생명과,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일들이 되는 것입니다.


O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면, 우리의 삶의 모습들이 아무런 의미도 없고, 특별한 것도 없이 매일매일 같은 일만 반복하면서 다람쥐 체바귀도는 것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그러나 이루지는 사실 등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자체 또한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에 의해서 행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O 그래서 우리는 지금 우리의 뒤에서 역사하시고 계시는 바로 그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서 매일 매일 살아가는 것이요,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들이 만나는 각각의 사건들 배후에서 우리를 위해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더에서는 우리를 위해 우리의 배후에서 역사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일하심을 액면 그대로를 보여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O 성경의 배열 순서를 보면, 에스더는, 욥기 앞에 나옵니다. 욥기서는 이스라엘의 민족적 회복과 대 환란 때 있을 유대인을 향한 사탄의 박해 사건을 예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욥기서입니다. 그래서 에스더는 예언적으로 주님의 재림에 바로 앞서 일어날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들은 주님의 재림을 앞에 두고 그 앞서 먼저 일어나야 하는 엄청난 사건 앞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에스더에 나오는 사건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 어느 때라도 일어날 수 있는 내용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O 본문 1절을 보면, 유대인들이 이방인 왕의 통치를 받고 있는 상황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페르시아는 당시 세계를 제패하던 이방 왕국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언적으로 페르시아는, 바로 영국을 예표 합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에게 너희의 땅으로 돌아가라는 칙령을 내린 두 왕이 있었는데,  한 왕은, 페르시아의 코레스 왕이고, 다른 한 왕은, 이방인 왕인 영국의 조지 5세입니다.


O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들의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한 가지 특별한 일을 먼저 행하셔야 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을 그들의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명령할, 한 왕을 택하시는 것이었습니다. O 그래서 유럽의 왕들 가운데 한 왕 즉, 페르시아 코레스 왕의 모형인 영국 왕을 제외하고는 모든 다른 왕은 다 죽어버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만이 왕이 있는 유일한 세계 강국으로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O 1절의 아하수에로는, 세상의 역사에서는 “크세르크세스”를 말합니다. 크세르크세스는, 그리스 침공으로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리스의 침공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이런 세상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는 별 의미를 두시지 않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께서는 유명하지도 않고, 별 보일 없는 그것도 포로로 잡혀온 한 유대인 소녀에 관해서 하나님의 시간을 집중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O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대단하게 생각하고 호들갑을 떠는 일이나, 또 어떤 한 사람을 내세우며 그를 평화주의자라고 떠들어 대며, 그는 극히 서민적이고, 순한 어린 양 같이 겸손과 온유한 사람이라고 추겨 세우는 어떤 인물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사5:8)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O 또, 지구상에 어떤 국가와 국가가 전쟁을 하게 되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전쟁이라”고 떠들어 대지만, 그러나 하늘 위에서는 거기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관심을 가지는 것, 주께서 관심을 가지시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뿐, 그것은 바로 구원받은 한 혼에 대해서입니다. O 그래서 우리들이 어떤 자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해 오면, 하늘 위에서는 영광중에 천사들이 환호하고 소리치며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0 그래서 주님은 눅15:7절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아흔아홉 명의 의인들보다 회개하는 한 사람의 죄인을 더 기뻐하리라.] 고 말씀 하십니다. O 이처럼 어떤 상황에 대해 보는 관점에 있어서 하늘과 땅, 하나님과 인간들 사이에 이 만큼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향해서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다](사5:8)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O 4절에 보면 [일백팔십 일]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날 수가 180입니다. 일백팔십 일은, 유대인 달력으로 반년에 해당하는 날인데, 이“반년”이라고 하는 날수가 성경에서는 중요합니다. 3절을 보면, [제삼 년에]이라고 말하고, 그리고 4절에서는, [일백팔십 일] 즉,“반년” 을 말합니다.


O 그러니까, 이 이방인 페르시아 왕의 통치가 “3년 반”에 이르게 됨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이방인의 때의 끝에 있을 “7년 대 환란” 전반부로 우리를 인도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5절에서는, 3-4절에서 3년 반이 끝나자, [왕이...왕궁의 정원 뜰에서...잔치를 베풀었는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O 신약에는, 헬라어가 아닌 단어들이 몇몇 있는데, 눅16:13절의 [재물]이라는 뜻의 [만몬]이라는 단어가 그것입니다. 이 [만몬]은 페르시아 말입니다. 또, 눅23:43절과, 고후2:14절에 [낙원]이란 뜻의 [파라다이스]란 단어 역시 페르시아 말입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보면 “수렵정원”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페르시아에서“낙원”이라하는 것은, 거대한 사유지로 녹지가 조성된 정원들이 있고, 그 안에는 사냥할 만한 야생동물들이 있는 장소를 말합니다. 따라서 [왕궁의 정원]은, 낙원과 같은 모습인 것입니다.


O 그래서 5절에서는, 결혼 축하 의식이 하늘 위에서 7일간, 즉 7년이 지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묘사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있는 이 결혼 축하 의식은, "혼인 잔치"는 아닙니다. 하늘에서는 결혼 축하의식만 있을 뿐,“혼인 잔치”는 주님과 재림한 후, 지상에 내려와서 천년 왕국 때 하게 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계19:9절에 [그때 그가 내게 말하기를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된 그들은 복이 있다고 기록하라.” 하고 또 내게 말하기를 “이것들은 참된 하나님의 말씀들이라.”]고 말씀 하십니다.O 그렇습니다. 성도들이 휴거되고 나서 하늘 위에서 결혼 축하 의식을 7년간 지속되는 반면, 지상에서는 욥기에 묘사되어 있듯이 이스라엘이 칠일 낮과, 칠일 밤, 즉 7년 동안을, 마귀에게 고통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표 상으로 유대인들을 통치하고, 왕의 칙령에 따라 정치적으로 그 민족을 회복시키는 한 이방 왕국의 모습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입니다.





O 그리고 5절에는, 이 잔치를 빛내고 있는 왕의 부유함이 대대적으로 진열되어 있습니다. 아하수에로가 자신의 부와 권력을 통해 [귀족들과 고관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주려는 것입니다. O 성경에서 이방 왕들은, 그들의 생일날(창40장, 마14장)이나, 결혼식(에2장)에,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해 보일 목적으로(단5장) 큰 잔치를 열었습니다.


0 그래서 이 왕의 잔치는, 왕의 정치적인 하수인들과 종들에게 은혜를 베풀 목적으로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왕이 잔치를 연다고 할 때는, 종들이 왕에게 선물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왕이 자신의 충실한 종들을 대접하고 그들에게 선물들과 영예를 베풀게 되는 것이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떠들썩한 잔치”에서 왕은, 그 왕국을 실제적으로 이끌고 있던 고관들, 귀족들 총독들이 왕보다 더 많은 부와 권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왕은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O 왕은 그런 식으로 그의 귀족들이 심리적으로라도“서열”을 유지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또 왕은, 그런 행사를 열어 충직한 고관들과 귀족들과 총독들의 노고에 후한 상으로 치하함으로써 종들의 충성을 확고히 다져 나갔던 것입니다. O 주님께서도 언젠가 왕께서는 그분의 종들을 위해 잔치를 베푸실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마22장, 눅14장, 계19장). 그리고 왕이 잔치를 베푸실 때 왕께서는 그분을 잘 섬겼던 종들을 영예롭게 하실 것이며, 또 그때 종들이 왕의 시중을 드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왕께서 종들에게 시중드실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O 그래서 주님은 눅l2:37절에서 [그 주인이 돌아와서 깨어 있는 종들을 보리니 그 종들은 복이 있도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 주인이 띠를 두르고 식사를 위해 그들을 앉힌 후, 곁에 와서 그들에게 시중들리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위대한 “잔치”에 참여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결코 어린 양의 혼인잔치를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O 5절에 나오는 [금과 은]및, [가는...베줄]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볼 수 있는 요소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주목해야 합니다. 그래서 고전3:12절에 [이제 누구든지 이 기초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짚이나 그루터기로 지으면]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또 계19:8절에 [이제 그녀에게 허락하사 정결하고 흰 세마포를 입게 하셨으니 세마포는 성도들의 의라.]고 말씀 하십니다.


O 또 7절에서는 [그릇들]이 나옵니다. 롬9:23절에 보면, [영광에 이르도록 예비 된 자비의 그릇들에게 그의 영광의 풍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다면 어찌하겠느냐?]고 말씀 하시면서, 또, 고후4:7절에서는 [그러나 우리가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그 능력의 탁월하심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님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O 그리고 딤후2:20-21절에는 [큰 집에는 금과 은으로 만든 그릇들뿐만 아니라 나무와 진흙으로 만든 그릇들도 있어, 어떤 것들은 귀히 여기고 어떤 것들은 천히 여기느니라. 그러므로 이런 것들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사람은 귀한 그릇이 되어 거룩하여지고 주인이 쓰기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을 위하여 예비 되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O 그리고 다시 5절에 보면, [침상들]이 나옵니다. 이 침상들은 취침할 때 사용하는 침대가 아니라, 식사할 때 사용되는 침상입니다.(에7:7-8). 식사에 초대되어 온 사람들은 이 침상에서 몸이 반쯤 누어있는 것처럼 기대고 식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카톨릭 신자인 다빈치가 그린“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은 잘 못된 그림인 것입니다.


O 다빈치는 그리스도와 제자들은 탁자에 앉아 있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최후의 만찬에서 주님과 제자들은 탁자 의자에 앉아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빈치는 성경을 무시하고 엉터리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을 그린 것입니다. O 다빈치가 그린 그림처럼 제자들은 의자에 똑 바로 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모두 침상에 기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사실이 성경에 분명하게 나와 있습니다.


0 그래서 요13:23절을 보면[그때 주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 곧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자가 예수의 품에 기대어 있더라]고 말합니다. 주께서는 머리를 팔꿈치에 댄 채 옆으로 누워 계시고 요한은 그의 머리를 뒤로 주의 가슴에 댄 채 누워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기대어 있을 때가 똑바로 앉아 있을 때보다 음식 소화가 잘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똑바로 앉아 있으면 위 근육이 온통 경직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O 7절을 보면, [왕의 포도주가 풍부하더라]고 말씀 합니다. 요한복음 2장에는 그리스도께서 만드셨던 포도주가 있습니다. 그 포도주는 발효되지 않은 초자연적인 포도주였습니다. 그것은 마26:29절에서 주께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제부터 내가 너희와 함께 내 아버지의 왕국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그 날까지 이 포도 열매에서 난 것을 마시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던 바로 그 포도주입니다.





O 다시 8절에 [마시는 것도 법대로 하여 아무도 강요하지 아니하였으니]라고 말씀 합니다. 동양의 왕들은 대개 그들의 향연에 참석한 손님들이 술을 일정량 마시게 하기 위해 축배를 들게 했습니다. 그리고 왕은 원하지 않으면 마실 필요가 없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던 것입니다. O 그들은“마시든 말든”마음대로 할 수 있는 개인의 자유에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는 왕이 그의 궁의 모든 관료들에게 그렇게 명하여 각 사람이 좋은 대로 하게 하였기 때문이더라]고 8절에 말합니다. 다시, 한번 여기에서는 하늘 위에서 거행 될 어린 양의 혼인식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O 다시 말해서 “혼인식”에서는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생각할 수 있으며, 어떤 것이 옳은지 그른 지 고심할 필요가 없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는 두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O 9절에 [왕후 와스티도 아하수에로왕에게 속한 왕궁에서 여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라.] 고 말씀 하십니다. 우리는 9절에서 이방인 왕후가 등장하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이방인 산부를 불러내고 계십니다. O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왕의 별채에서 왕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는 신부와 같은 것입니다. 왕후는 남편과는 떨어진 별채에 거하게 되어 있습니다.(왕상7:8)그리고 왕후는, 거기에서 왕의 부름을 받을 준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제 막 휴거로 불려 올라갈 가능성을 지닌 이방인 왕후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왕후는 가지 않습니다.





O 그래서 그 왕후는 폐위되고 유대인 신부로 대체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로마서11장에서 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롬11:1-11:1-2절에 [그렇다면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났으며 베냐민 지파라.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O 그래서 사도행전서 유대인들이 그 메시야를 구주로 받아들이기를 거절했을 때, 주께서는 점차적으로 이스라엘을 옮겨 버리시고, 그 대신 이방인들을 집중적으로 경영하기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교회시대의 끝에는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옮겨 버리시고, 그 대신 그 자리를 다시 이스라엘로 바꾸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지금 하나님께서는 점차적으로 이방 민족들을 전체로 다루시는 것을 중단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회심하는 숫자가 금속이 줄어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그 옛날처럼 부흥이 일어나지도 않는 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이방인들을 경영하시던 것을 하나님께서는 중단하시고 계시지 때문입니다.


O 그리고 이제 곧 성령께서는 사도행전 2장에서 그분의 역사를 시작하셨던 장소, 곧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땅에서 그 역사를 마무리하실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을 내버릴 절차를 밟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참으로 놀라운 책입니다. O 42명의 저자들이 한 자리에 앉아 함께 공모하여 성경과 같은 책을 쓰려고 했다면,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결코 가능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미래에 대해서 전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42명의 서로 다른 저자들이 1, 600년의 기간에 걸쳐 서로 다른 세 개의 대륙에서 기록한 유일한 책이지만, 그러나 단 한 글씨도 틀리지 않게 향후 2, 000년 내지, 3, 000년 이후에 있을 사건들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O 뿐만 아니라, 그 사건들은 단 하나의 빠짐없이 한 결 같이 그대로 성취되었고 지금도 성취도고 있으며 앞으로도 정확히 성취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저자는 바로 성령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기록자들의 모든 것을 완전하게 주장하시고 한자 한자가 모두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것입니다. O 여기에 기록자의 생각이나 기록자의 감정이나 기록자의 의도가 전혀 개입할 수 없이 완전하게 성령에 의해서 통제된 상태에서 기록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축자 영감으로 기록된 것입니다.“축자 영감”이라는 말은 글씨 한자 한자를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에는 전혀 오류가 있을 수 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성경을 하나님으로 말합니다.


O 그래서 롬10:11절에 [성경이 말씀하시기를]이라고 말하면서, 또, 딤전5:18절에서도 여전히 [성경이 말씀 하시기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신 성경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주 강력하게 말씀 하십니다. 무엇이라고 말입니까?


O 그날이 속히 올 것이라고! 내가 속히 올 것이라고! 그러므로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의 현 상태는 별체에서 왕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는 신부, 다시 말하면, 별체에서 왕의 부름을 받고 왕 앞으로 나가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신부와 같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0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왕의 부름을 받고 왕 앞으로 나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렇게 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언제라도 왕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할렐루야 주를 찬송하며 주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들은 주 오심을 고대하고 주님을 만날 준비하는 삶, 복음을 전하고, 깨어 기도하며, 선한 일에 부한 삶을 사시다가 주께서 공중으로 내려오실 때 주와 만나기 위해서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