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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박종각 2019. 12. 8. 01:59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주    일     예    배
                                         창4:1-9절 말씀입니다.


[아담이 자기 아내 이브를 알았더니 그녀가 임신하여 카인을 낳고 말하기를 “내가 주로부터 남자를 얻었다.” 하니라. 2그녀가 또 카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으나 카인은 땅을 경작하는 자였더라. 3시간이 흐른 후에 카인은 땅에서 나는 열매를 가져와서 주께 제물로 드렸고, 4아벨도 자기 양떼 가운데서 첫배 새끼들과 그 살진 것을 가져왔더니, 주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카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셨더라. 그러므로 카인이 몹시 격노하고 안색이 변하더라. 6주께서 카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찌하여 격노하느냐? 어찌하여 네 안색이 변하느냐? 7네가 바르게 행하면 받아들여지지 않겠느냐? 네가 바르게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 앞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욕망이 네게 있으니,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시니라. 8 카인이 그의 아우 아벨과 이야기하더라. 그들이 들에 있을 때 카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달려들어 그를 죽이니라. 9주께서 카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가 말하기를 “나는 모르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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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본문1-2절에 보면 [아담이 자기 아내 이브를 알았더니 그녀가 임신하여 카인을 낳고 말하기를 “내가 주로부터 남자를 얻었다.” 하니라. 그녀가 또 카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으나 카인은 땅을 경작하는 자였더라.]고 말씀합니다.O 4장은, 이브가 임신해서 아이를 낳은 것으로부터 시작을 합니다. 하지만, 본문1절의 말씀을 보면, 이 말씀 주위에는 매우 어두운 분위기로 감싸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카인과 관련해서입니다. 카인에 관해서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브가 창3:15절의 말씀을 착각했다는 사실로 들어납니다. 창3:15절에서 하나님은, 뱀을 심판하시는데 이때 하나님께서 뱀에게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그녀의 씨 사이에 적의를 두리니 그녀의 씨는 너의 머리를 부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부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그런데 이브는 바로 이 주의 말씀에 의해서 카인을 얻은 것이라고 착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브는 카인을 낳은 후 “내가 주로부터 남자를 얻었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0 여기서 “주”는 아담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주 하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카인은, 주의 말씀에 의해서도, 아담으로부터도, 아니면, 이브가 남자 없이 여자홀로 난 [여자의 씨]로도 얻은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의문의 카인은 도대체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 여기에 대해 성경은 카인이 사탄으로부터 즉 [악한 자]로부터 온자였다고 분명히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카인이 온 목적은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일3:12절에 [카인같이 되지 말라. 그는 그 악한 자로부터 나왔으며 자기 아우를 살해하였으니, 무슨 연고로 그를 죽였겠느냐? 이는 그 자신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웠기 때문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0 성경은 마귀가 세상에 온 목적을 세 가지로 말씀 하시는데, 1) 도둑질하고, 2) 죽이고, 3) 멸망시키는 일입니다. O 그러나 주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10:10절에서 [도둑은 오직 도둑질하고 죽이며 멸망시키려고 오지만, 내가 온 것은 양들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고 주님은 말씀 하십니다. O 그래서 악한 자로부터 온 카인은, 그의 생애와 성품의 모든 요소가 마지막 때의 [죄의 사람]과, [짐승]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1. 카인과 적그리스도는, 둘 다 뱀의 [씨]입니다. (“멸망의 아들”살후 2장). 2. 카인과 적그리스도는, 둘 다 표를 갖고 있습니다. (계13:13-18). 3. 카인과 적그리스도는, 둘 다 살인자이며, 거짓말쟁이입니다.(요8:44). 4. 카인과 적그리스도는, 둘 다 저주를 받았습니다. (시119:21).





O 그리고 본문2절에 [그녀가 또 카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기“또”라는 말은, 이브가 카인을 낳은 후, 1년이나 2년 후에 다시 임신을 해서 아벨을 낳았다는 말이 아니라, 카인을 낳고, 이어 또 동생 아벨을 낳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카인과 아벨은 쌍둥이입니다. 그래서 본문 1절의 [이브의 임신]은, 씨가 다른 이중 임신인 것입니다. (쌍둥이 가 한 달 간격을 두고서 임신될 수 있다는 것은 의학계의 정설임). 그리고 성경은, 바로 카인과 아벨의 두 출생을 통해서 선과 악 사이의 차이점을 보여주시기 위해 이 두 쌍의 요소를 대조시키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별, 구별, 분리, 성별은 영적인 문제들에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입니다. 마귀는 통합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마귀는, 옳은 것과 나쁜 것을 통합해서 더욱 나쁜 것을 만들어 내고, 악한 자와 선한 자를 통합하여 더 악한 자를 만들어 냅니다.


0 마귀는 썩은 것과 썩지 않은 것을 통합해서 썩은 것을 만들어냅니다. 마귀는, 썩지 않은 사과 아홉 개에, 썩은 사과 한 개를 통합시켜 금세 열 개의 썩은 사과를 만드는데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썩지 않는 사과 아홉 개는 썩은, 사과 한 개를 온전하게 만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O 그래서 썩은 것은, 썩은 것대로, 썩지 않는 것은, 썩지 않는 것대로, 분리하고, 구별하고, 성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합은 마귀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분리주의 자입니다.


0 그래서 성경은 차별, 구별, 분리의 선을 분명하게 긋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성령께서 계시면 성령께서는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분리시키고, 불신자로부터 분리시키며, 죄악으로부터 분리시키고, 비 진리로부터 우리를 분리, 구별, 차별시켜 갈라놓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받으면,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죄들로부터 분리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 13:3절에 [그들이 그 율법을 듣자 혼혈의 모든 무리를 이스라엘로부터 분리하였더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그분의 율법을 버리고 이방인들과 섞어 살던 이스라엘이 마침내 그들 앞에서 율법이 읽혀지자 그들은 그 즉시 죄로부터, 악으로부터, 이방인으로부터 분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0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죄로부터 악으로부터, 마귀로부터, 악한 행동으로부터, 비 진리로부터 악인으로부터, 혀 바닥 돌아가는 대로 짓거리는 거짓 교회, 거짓 목사들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롬12:2절에서 [너희는 이 세상과 일치하지 말고 너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O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믿음을 세워 주시기 위해 여러 쌍을 대조시켜 주시면서, 예를 들면, 이스마엘과 이삭, 카인과 아벨, 에서와 야곱, 믿지 않는 자와 믿는 자들을 대조시킴으로써 무엇과 무엇을 차별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틀을 세우시고 이에 입각해서 모든 예표들과 기준들을 설정하시며, 인생사에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이것들을 통하여 판단하시는 것입니다.


O 2절에 [카인은 땅을 경작하는 자였더라]고 말씀 하십니다. 땅은, 하나님께로부터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창3:17절에 [너로 인하여 땅은 저주를 받고]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나 카인은 저주받은 땅을 자신의 경작지로 삼았습니다. 카인은 처음부터 잘못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저주받은 것으로 하나님께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카인은 보라는 듯이 저주받은 것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카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아벨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체를 돌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4절에서 아벨을 받으셨고 그의 제물도 받으신 것입니다.


O 3-5절에 보면 [시간이 흐른 후에 카인은 땅에서 나는 열매를 가져와서 주께 제물로 드렸고, 아벨도 자기 양떼 가운데서 첫배 새끼들과 그 살진 것을 가져왔더니, 주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카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셨더라. 그러므로 카인이 몹시 격노하고 안색이 변하더라].고 말씀합니다. 시간이 흐른 후에 마침내 카인과 아벨은 하나님께 재물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카인은, 아벨보다 먼저 제단에 등장합니다. 이것을 보면 카인은, 아벨보다 더 종교적이고 더 열심히 있었음이 틀림없습니다. O 카인은, 어디로 가야할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리고 언제 가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고, 그리고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할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0 그렇습니다. 카인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가시나무와 엉겅퀴의 땅을 일구어서 들의 소산을 먹고, 땀을 흘려야 빵을 먹게 되는 자신의 고달픈 이 삶의 원인은, 자신의 부모가 하나님을 거역한 죄에 의해서, 자신역시 죄인이 되어, 죄인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갈 때는 반드시 자신의 죄를 가리 울 속죄의 재물을 가지고 가야 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O 카인은 지성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나름대로, 자기 양심에 따라, 자신이 땀 흘려 얻은 자신의 선행의 열매를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바쳤던 것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복 받을 만한 일로 인정되는 아름다운 행동을 카인은 한 것입니다. O 그래서 카인은 거짓말쟁이요, 살인자라는 것만 빼고, 그리고 그가 또 악한자로부터 온 것만 빼고는, 그는 뛰어난 사람이고 훌륭한 사람이며 적어도 수만, 혹은 수십만 명의 성도를 이끌 수 있는 목회자요, 뛰어난 정치가요, 뛰어난 응변가요, 창의적인 사람이요, 매일아침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이 자신을 축복하는 아주 뛰어난 긍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분명히 그렇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마음에는 전혀 다른 것이 들어 있었습니다.


O 그의 마음에는 어두움의 세력이, 거짓말이, 하나님을 향해 분노가, 살인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하나님의 방식보다는 자신의 방식이 더 좋고, 더 우월하다는 사악한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카인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사람을 때려죽여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마귀의 품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아비는 바로 마귀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8:44절에서 주님은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나와서 너희 아비의 정욕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으며...]고 말씀 하십니다.


O 그래서 하나님의 법에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지 않고, 자기 방식에 따라 자기 나름대로 행하는 이 땅의 모든 종교는 저주받은 카인의 종교인 것입니다. 카인의 종교는 구원하고는 전혀 관계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과 종교는 완전히 별개인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인은 구원받은 사람들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교인이 아닙니다. 그러면 기독교인입니까? “종교가 무엇인가” 하는 빈칸에 기독교라고 쓰고, 또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 기독교인이라고 말을 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사실은 기독교라는 말 자체도 틀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다 구원받은 사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정답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여러분들에게 당신은 종교인입니까? 묻거든, 나는 종교인이 아닙니다. 나는 단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입니다. 라고 대답하시기를 바랍니다.O 종교는, 땅에서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수많은 종교들, 수만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카인을 저주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깨닫지 못하고 열심히 저주받은 카인의 뒤를 따라 하나님께로 나가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란, 인간이 자기 스스로 의롭게 되려는 하나의 시도인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자기는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죄인들에게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혜의 선물인 것입니다.





O 그래서 창세기 3장부터 l2장까지에서 신약과 동일한 문맥에 처해 있는데 그것은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은 다름 아닌 은혜로 이룩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6:8절에 [그러나 노아는 주의 눈에서 은혜를 찾았더라.]고 말씀합니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벌거벗음을 옷으로 입히시기 위해 거저 주시는 선물인 가죽 옷을 받았습니다. O 카인도 마땅히 그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카인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분명히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믿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귀도 믿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약2:19절에 [네가 한 분 하나님이 계심을 믿으니 잘하는 것이라. 마귀들도 믿고 떠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O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계신 그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카인은 하나님께서 계신 것은 믿었지만, 그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는 믿지는 않았습니다. 주님께 드리는 제물에는 여러 종류의 제물이 있습니다. 물론 음식 제물도 있습니다. 그러나 음식재물은 속죄 제물 뒤에 나와야하는 제물입니다. 그러나 카인은 [음식제사]를 번제보다 먼저 가져온 것입니다.


O 물론 카인은 모든 제물들을 최상품으로만 골라서 정성을 드려 깨끗하게 씻어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카인의 제물에는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의 제물에는 속죄의 피 가 없다는 것입니다. 카인이 최상품의 농산물을 아무리 풍성하게 싸놓고 제사를 드렸다 하더라도 이 식물에서는 속죄의 [피]를 얻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카인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O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카인을 받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카인의 종교에는 결코 응답이 없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오직 저주만 있을 뿐입니다. 종교는 인간이 자기 나름대로 행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구원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 하나님께서 직접 행하시는 것입니다.





O 그래서 딛3:5-6절에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에 의하지 않고 그의 자비하심에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이 성령을 예수 그리스도 우리 구주를 통하여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셨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O 종교는 겉으로는 좋아 보이고, 아름답게 보이고, 풍성하게 보이고, 향기로운 제물처럼 보이고,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생각으로 온갖 정성으로 자신의 땀과 눈물과 수고의 결실로 얻어진 것들을 드려지는 것들이기에 마치 금방이라도 하늘에서 응답하실 것 같이 보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더러운 쓰레기요 그들의 종교는 결국 불타는 지옥인 것입니다.O 4절에서 [아벨도 자기 양떼 가운데서 첫배 새끼들과 그 살진 것을 가져왔더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벨은 그 첫 번째 것 중에서 가장 기름지고 좋은 것은 것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의 제단위에 자신들의 제물을 올려놨습니다. 그래서 카인의 예배와, 아벨의 예배 사이에는 현저한 차이점이 들어나게 된 것입니다.


O 카인은, 풍성하게 올려놓은 자신의 제단 앞에 폼 나게 앉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늘을 향해서 자만의 양 손을 번쩍 들어 올리고 하늘을 응시하며 당당하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주 폼이 납니다. 그 자세만 보더라도 무엇인가 그럴듯합니다. 일단 분위기에 앞도 됩니다. 대개 종교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보기에 매우 그럴듯합니다. 그들은 분위기로 사람들을 분위기로 압도합니다. 그들의 옷차림은 매우 위엄스럽게 보이도록 최대한 치장을 합니다.


O 그러나 아벨의 예배는 보기에도 형편이 없습니다. 좋게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벨은 멀리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감히 우러러 보지 못한 채 [하나님이여,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라고 중얼거리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예배는 마치 신약 눅18장에서 바리새인과 세리, 이 두 사람이 드린 예배와 결과와 꼭 같습니다. O 한번은,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으로 올라갔는데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요, 또 한 사람은, 세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바리새인은 당당히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즉 착취하고 불의하며 간음하는 사람들과 같지 아니하고, 또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내가 얻은 모든 것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라고 기도합니다.O 그러나 그 세리는 멀리 떨어져 서서 차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자기 집으로 내려갔다]고 말씀 하십니다.





O 또, 카인과 아벨이 드려졌던 [제물들], 또한 전혀 달랐던 것입니다. 카인은, 그가 쌓아 놓은 제단 위에 온갖 야채. 과일. 꽃. 나물 등을 풍성하게 쌓아 놓고서 [주여, 저는, 저 나름대로 주님께 최선을 다해 경배합니다. 제가 알기로 주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주께서는 정성을 받으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땀 흘린 나의 정성을 받아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 기도와 간구에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정막만이 감돌았습니다.


O 그러나 아벨의 제단에는, 너무나 단조롭고 너무나 간단하고 너무나 초라했습니다. 그래서 쓸쓸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아벨의 제단에는 그 흔해 빠진 꽃 한 송이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제물은 가장 귀한 피 흘린 제물이었습니다. 주 앞에 그것이면 족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도 필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뿐이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눅10:44), 아벨의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려지는 예배였던 것입니다.


O 그리고 아벨은 [주여, 저 대신 주님께 이 양을 드리니 저의 피 대신 이 양의 피를 받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이 기도가 끝나자 천둥소리와 번개 치고 하늘로부터 불꽃이 내려와 아벨의 제단을 태워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을 즉시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벨은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올바른 제물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벨은 자신이 하나님께로 받아 드려 졌다는 사실을 바로 그 자리에서 알게 된 것입니다.(롬8:38-39). 그래서 예배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O 다시 5-7절에 보면 [카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셨더라. 그러므로 카인이 몹시 격노하고 안색이 변하더라. 주께서 카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찌하여 격노하느냐? 어찌하여 네 안색이 변하느냐? 네가 바르게 행하면 받아들여지지 않겠느냐? 네가 바르게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 앞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욕망이 네게 있으니,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O 5절에 [카인이 몹시 격노하고 안색이 변하더라]고 말씀합니다. 카인은 처음부터 비뚤어진 자였습니다. 카인은 하나님 앞에 무엇을 가져와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는 다른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자신이 수고한 것, 즉 자신의 의를 가지고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 앞에 갈 때는, 그분의 피를 앞세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자랑해야 할 것은, 나의 그 무엇이 아니라,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는 결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6:14절에 [그러나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나니...]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O 7절에 보면, [네가 바르게 행하면....]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의 규칙은 매우나 간단했습니다. [네가 바르게 행하면] 입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카인이 바르게 했다면, 그는 아벨처럼(요일3:24,5:9) 하나님께 받아드려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카인은, 자기를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의 행위를 신뢰하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구원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인간의 노력의 결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르게 행할 때, 주께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O 그래서 우리가 [네가 바르게 행하면], 다시 말하면, 우리들이 성경에 순종했다면,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면, 주를 신뢰했다면, 우리는 이미 우리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를 믿고 의지하고 신뢰하는 자는, 자신이 [사랑하시는 이 안에서 받아들여졌고],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으로[택함을 받았으며], 자신은 이미 [그분과 천상에 함께 앉은바 되었고], 자신은 이미 [그분 안에서 온전하게 된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엡l:6.1:4. 2:6, 골2:10).  그런데 이 사실을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 주시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예배를 받아 주시고, 우리의 기도를 받아 주시기를 원한다면, 자기 제멋대로, 자기 나름대로, 자기 방식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하라고 한 대로, (행16:31). 즉 성경대로 믿고 행하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서 [네가 바르게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 앞에 엎드리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O 카인은, 실제적인 문제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최초로 죄에 대해서 카인에게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죄가 문 앞에 엎드리느니라...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성경은 여기에 대해 [모든 불의가 죄니라], [죄는 율법을 어기는 것이라], [믿음으로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라] [높은 눈, 교만한 마음, 악인의 쟁기질은 죄니라], [어리석은 자의 생각이 죄니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잠21:4;24:9,약4:17.요일 5:17,3:4,롬l4:23).


O 그러나 성령께서 오늘날 생각나게 하시는 그 죄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믿지 않음” 을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믿지 않음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요16:9절에 [죄에 대하여라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요]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죄가 카인의 장막 문 앞에 엎드려 그를 지배하려고 하였습니다. (롬6:14).


O 카인은, 하나님이 계신 것은 믿었지만, 그러나 그 하나님은 믿지 않았습니다. 카인은 악한 자였습니다. 카인의 아벨을 죽였기 때문에 악한 것이 아닙니다. 카인은 아벨을 죽이기 전에 이미 악한 행위가 있었던 자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악한 행위들 때문에 아벨을 죽였던 것입니다. 만약 카인이 악하지 않고 악한 자에게서 나온 자가 아니었다면, 옆에서 아벨의 응답을 본 그로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지를 알았기 때문에 자신도 하나님께 응답받기 위해서 재빨리 아벨에게 양 한 마리를 구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분명히 착한 아벨은 즉시 형 카인에게 양 한 마리를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할 수도 있었는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인 것입니다.





O 살고자 한다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 말입니다. 구원을 받고자 한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고백하고 자신의 죄들을 제거하시기 위해 죽으신 주, 자신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고 그분을 자신의 주로 영접해야 되는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대신 카인은 아벨에게 몽둥이를 선사 한 것입니다. 그는 교만한 자였던 것입니다. O 하나님은 살인자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출2:12). 술주정뱅이나(창9:21). 간음자나(삼하11:4), 도둑이나(눅23:43) 혹은 거짓말쟁이도(막l4:7l)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만한 자는 결코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은 카인에게 마지막 말씀을 주십니다.


0 그래서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죄가 너를 다스리려고 하지만, 그러나 너는 그 죄를 막아야 한다. 비록 네가 아담의 형상을 입고, 아담의 옛 성품을 지니고 있지만, 그러나 너는 죄를 다스려야지, 죄가 너를 다스리게 해서는 안 된다] 는 말입니다.


O 하나님께서는 카인의 문제가 무엇이고 그리고 그 해결책이 무엇인지를 차분하고 친절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악한자로부터 온 카인이 그 말씀을 들을이 없습니다. 그래서 카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황급히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8절에 [카인이 그의 아우 아벨과 이야기하더라. 그들이 들에 있을 때 카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달려들어 그를 죽이니라]고 말씀합니다. O [카인이 아벨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우리는 모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동생 아벨의 제물을 받으셨을 때 카인이 몹시 격노하고 안색이 변한 것을 본다면, 아벨을 만났을 때, 카인은 동생 아벨에게 생트집을 잡았을 것입니다. “야, 네가 주께 응답을 받았다고 네가 나를 우습게 보는 거야?” 이런 식으로 몇 마디 오고 가다가 그에게 달려들어 손에 들고 있던 몽둥이로 아벨의 뒤통수를 내리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카인으로부터 얻어맞은 아벨은 땅에 피를 쏟으며 쓸어 졌습니다.




O 9절에 [주께서 카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가 말하기를 나는 모르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카인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의 아우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입니다.


O 바울은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세상에게 재정적 지원을 하는 것은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 분명히 [형제를 지키는 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성경에서 형제라고 말씀 하실 때 이것은 육신의 형제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를 믿고 구원받은 믿음의 형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O 물론, 우리는 구원받지 못한 이웃들(롬9:1-3)에 대해 동정심을 갖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고 기도도 합니다.(행20:24. 26, 딤전2:l-2, 6-8).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자선사업들은 성경 그 어디에도 그리스도인의 행동강령으로 나와 있지 않습니다. 가난한 성도들이 아닌, 주께 드릴 헌금을, 가난한 사람을 도우라는 것은, 신약성경에서 단 한번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요l2:4-5절입니다.




O 그런데 거기에서 세상 자선사업 프로그램의 적극 동참하라고 소리쳤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게 누구였습니까? 그는 다름 아닌 바로 마귀였던 유다 이스카리옷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우리가 누구를 도울 것인가? 우리가 누구에게 우리의 사랑을 행해야 하는가? 를 분명하게 분별할 줄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O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형제들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0 왜냐하면, 이것이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일4:21절에 [이것이 우리가 그분께 받은 계명이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하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우리가 주께 받은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O 그래서 요일5:2-3절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키면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함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이것이니, 곧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O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주 안에서 형제 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더욱 기도하고 사랑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는 성도들로서 우리가 주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사람들로 알려지므로 주님을 더욱 영화롭게 사는 삶을 살다가 주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공중으로 들림 받아 영원한 나라로 들어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