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나의 생명을 찾고 있나이다.
롬11:1-3절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났으며 베냐민 지파라. 2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느니라. 너희는 성경이 엘리야에 관하여 말한 것을 모르느냐? 그가 하나님께 이스라엘에 대하여 중보하여 말씀드리기를 3“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홀로 남았는데 그들이 나의 생명을 찾고 있나이다.”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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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1절에 [그렇다면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났으며 베냐민 지파라]성경에서 하나님의 [자기 백성]이라고 말할 때, 이것은 이스라엘을 일컫는 말입니다. 물론, 주 예수를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우리 그리스도인도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자기 백성]이라고 특별히 말할 경우에는 적어도 99%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O 그런데 지금 성경이 하시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바울 자신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베냐민 지파]에 속하는 이스라엘이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러한 바울만 보더라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모두 버리셨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O 물론, 바울이 회심하고 구원받은 것은, 이스라엘의 민족적 구원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바울은 구약의 율법에 따라 구원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신약 적 구원계획에 따라 [개인적]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신약 시대, 구약의 율법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시대에는,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상관없이 개별적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구주로 영접하면, 그 사람은 구원받고 더 이상 유대인도, 이방인도 아닌, [교회],즉 “그리스도인”라는 특별부류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0 그래서 하나님께서 결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이방인의
때가 서서히 끝나 감과 동시에 이스라엘의 민족적 구원과 회복에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특별한 민족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일시적으로 손을 떼시고, 잠시 외면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들을 제거하시고, 그들을 민족적으로 구원하셔서 그들의 본래 자리로
다시 회복시켜 주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것을 내다보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고, 그리고 이스라엘민족을 회복시키는
이 일은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이미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O 1절에서 바울은, 자기 자신을 두고 [나도 이스라엘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가 하면, 갈2:15절에서는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라고 또, 말합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이스라엘인]이라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을 [유대인]이라고 말하는가? 에 대해서 억지로 구분합니다.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와 상황이 비슷해서 사울 왕을 거쳐, 다윗과, 솔로몬 왕 시대까지는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하나]의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두 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이 자신의 죄에서 돌아서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네 나라를 찢어 네 신하에게 주리라]고 말씀 하시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이스라엘을, 남쪽과 북쪽으로 찢어 하나의 국가를, 둘로 갈라지게 하신 것입니다. (왕상11장)
O 그래서 이스라엘의 열 두파 중에서, [열 지파]는, 북쪽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남쪽에는 열 두 지파 중에서, [두 지파] 즉, [유다와 베냐민] 지파만,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아 [유다] 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은, 이스라엘을, 지역적으로 구분해서 [이스라엘인]이라고 하면, 북쪽 왕국에 있는 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이고 또, [유대인]이라고 하면, [남쪽 왕국] 에 있는 [유다 족속]을 말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틀린 말입니다.그래서 갈2:14절에 보면, 바울은 베드로에게 [너는 유대인으로서 유대인처럼 살지 아니하고 이방인들의 방식을 따라 살면서 어떻게 이방인들을 유대인처럼 살도록 강요하느냐?]고 말합니다. 지역적으로 말한다면, 베드로는 사마리아 북쪽 갈릴리의 벳세다 출신이기 때문에 [유대인]이 아닙니다.
0 그래서 지역 적으로 본다면, 베드로는 유대인이 아니라, 분명히 [이스라엘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사마리아 북쪽 갈릴리의 벳세다 출신 베드로를 보고, [너는 유대인]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리고 진짜 [유다의 베냐민] 출신인, 자신을 가리켜서는 나는 [이스라엘인]이라고,본문 1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 왕국, 남 왕국] 이라는 지역적인 것하고는 전혀 상관없이 그들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족속]이라면, 그들 모두는 이스라엘이 되고, 유대인들이 되기 때문에, 그들을 지역적 구분 없이, 상황에 따라서 그들을 이스라엘인이라고 부르든, 유대인이라고 부르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O 2-3절에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느니라 . 너희는 성경이 엘리야에 관하여 말한 것을 모르느냐? 그가 하나님께 이스라엘에 대하여 중보 하여 말씀드리기를,] 이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지금 여기서 엘리야의 중보에 대해서 말하는데, 그런데, 바울이 말하는 엘리야의 이 [중보]는, 중보 같지 않은 매우 이상한 중보입니다. 왜냐하면, 중보라면, 그들을 위해서 좋게 말해주고, 그들을 위해 간구하고, 변호하는 중보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나 엘리야의 중보는 오히려 하나님께 이스라엘의 잘못을 낱낱이 고자질하고 비난하므로 이스라엘을 불리하게 하는 중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3절에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홀로 남았는데 그들이 나의 생명을 찾고 있나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인용한 말씀은 왕상19:10절과, 14절의 말씀입니다. 엘리야가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
의 협박이 겁나 도망하여 브엘세바에 이르자 거기에 자기 종을 남겨두고서 자신은 광야로 하룻길이나 더 가서, 향나무 아래에 앉아 하나님께 죽기를 구하며 [주여,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하고 부르짖다가 지쳐서 쓰러져 잠이 듭니다. 그때 천사가 나타나 그를 깨우고 물과 먹을 것을 가져다 먹입니다.
O 이렇게 해서 기운을 차린 엘리야는 다시 밤낮 40일을 걸어서 호렙 산에 도착하게 되었고, 그리고 호렙 산에 도착한 엘리야는 어느 굴에 들어가 있었습니다.그런데 굴속에 들어 앉아 있던 그에게 [엘리야야,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어옵니다.(왕상19:1-9) 그때 엘리야는 자기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중보의 말씀을 드리게 된 것입니다.
O 그래서 왕상19:10-15절에 보면 [그가 말하기를 "내가 만군의 주 하나님으로 인하여 심히 질투하였사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었으며 주의 선지자들을 칼로 죽였음이니이다. 나, 오직 나만이 남았는데 그들이 내 생명도 앗아가려고 찾고 있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하신 대답이 바로 4-5절의 말씀입니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고
죄를 멀리 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